구원받은 부자의 이야기    
구원받은 부자의 이야기                  막 10: 23-26, 눅 19: 1-10
                                                길벗교회,  9/16/2007
시작하는 말:
신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구원이다.
구원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 교인은
Name: 문동환
  사담 후세인의 교수형을 보면서
사담 후세인의 교수형을 보면서
    사담 후세인이 지난 달 30일 교수형의 이슬이 되었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는 장면을 보는 나의 마음에는 세상 끝에 악마가 무저항에라도 떨어지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긴 칼을 휘두르고 한 손으로 장총을 들어 쏘면이 기세를 보이면서 수많은 시하이족을 학살하고 화학무기로 수만의 크르트 족을 죽이던 그가 결국은 온 세계가 보는 가운데 교수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교수형은 그냥 그에 대한 심판만이 아니다.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만든 미국의 심판이기도 하다. 그의 교수형을 보는 세계는 동시에 그를 그렇게 만든 미국의 추악한 모습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를 독재자로 세운 것이 미국이다. 날로 세를 얻는 이란을 견제하기 해서 미국이 그를 세우고 각가지 흉악한 무기를 주어 만행을 자행하게 했다. 그랬는데 미국은 다시 이락을 위시한 중동의 패권을 쥐기 위해서 이락을 침공하고 후세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사형에 처했다. 그 것도 2006 년이 지나기 전에, 그가 그푸트족에게 행한 만행이 밝혖기 전에 사형이 처해진 것이다. 12월 30 일은 아랍인들의 거룩한 축제의 날인데도 말이다. 구르트 족에게 대한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그것이 감추어질 수 없다. 서둘러서, 그것도 아랍인들의 거룩한 축제의 날에 그의 입을 다물게 하려한 행동이 오히려 아랍인들의 분노를 조장했고 온 세계의 안목을 이에 집중하게 했다. 결구 사단 후세인이 추락한 무저항에 미국의 앞날도 같이 추락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말 서글프다.
Name: 문동환
  밀양(密陽)의 하나님
                          밀양(密陽)의 하나님
                             (마태복음5:38-48)
최근에 개봉된 密陽 (Secret Sunshine)이라는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으로 하여금 여우주연상을 타게 해서 유명해진 영화다.  이청준씨의 ‘벌레이야기’ 라는 원작소설을 각색하여 이창동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결코 기독교적인 영화는 아니다. 교회가 많이 등장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보면 기독교에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입장에 서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을 때 그 힘든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해 종교를 찾는 본능적 욕구, 그리고 신앙과 현실적 삶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을 그린 영화다.  
이미 보신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어린 아들 준이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을 찾아간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고향에 가서 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밀양으로 들어가는 국도변에서 몰고 가던 차가 고장이 나게 되고, 그 차를 고치러온 카센타 주인인 김종찬(송강호)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종찬은 신애 주변을 맴돌며 신애를 짝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같은 차를 타고 밀양으로 들어가면서 신애는 종찬에게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  종찬은 부정적인 투로 “밀양은 한나라당 도시고, 경제가 매우 안 좋다”고 말한다. 그 말 끝에 신애는 밀양의 뜻이 뭔 줄 아느냐고 되물으면서, 밀양은 비밀밀(密), 볕양(陽), 즉 비밀스런 햇볕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문제목이 secret sunshine이 되었다.  
밀양에 터를 잡은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열고,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한다. 동네 여자들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땅을 사서 예쁜 집을 지어 살고 싶다고 떠벌리면서, 땅을 알아보고 다니기도 한다.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약국 주인 김 집사는 신애에게 함께 교회를 다니자고 권유한다. 그렇게 낮선 땅 밀양에서 뿌리를 내려가던 어느 날 웅변학원에 다녀오던 아들 준이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준이를 유괴해간 유괴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유괴범은 돈을 요구한다.  준이를 구하기 위해, 신애는 통장에 들어있는 전 재산과 같은 870만원을 찾아서 유괴범이 지시한 강변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돌아온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를 한 유괴범에게 준이를 돌려달라고 통사정한다. 돈은 그것밖에 없다고, 그냥 평소에 돈 있는 척 해 본거라고, 제발 준이를 돌려 달라고 울부짖지만 전화는 끊기고 만다. 결국 신애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은 수사 끝에 웅변학원 원장을 유괴살인범으로 체포하고, 준이의 시체를 찾게 된다.
Name: 강영선
   기독교와 조상제사
         민들레성서마을 김재성 드림                                                    제182호 / 2007 년 9월 24일 발행 기독교와 조상제사 강 영 선 목사     
(한신대 교수)     흔히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기독교인들은 왜 제사를 안 드리는가?  그것은 조상공경의 미풍양속에 반하는 것 아닌가?” “기독교인이 제사 때 절을 안 하고 서서 기도만 하는 것은 가족공동체의 화합을 해치는 행위가 아닌가?”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던데, 조상공경과 우상숭배의 차이는 무엇인가?” 등등.     1. 제사문제와 기독교의 충돌 질문에서처럼 제사문제는 실제로 명절을 당할 때마다 가족공동체 속에서 부닥치는 문제다. 제사문제로 인해 가족 간에 화합이 깨진 가정들도 많이 있고, 명절 때 가족이 모이는 모임을 일부러 기피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한 평생 가족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인데,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기독교인들은 왜 제사를 드리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기독교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질문이다. 기독교는 기독교적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그것을 흔히 ‘추도식’ 또는 ‘추모예배’라고 부른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유교적 방식으로 제사를 드려온데 비해 기독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종종 오해를 받는 것이다.  지금부터 220여년 전에 이 땅에 천주교가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이 제사문제로 인해 천주교인들이 모진 박해를 받았던 것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일찍이 16세기에 중국에 들어갔던 예수회 신부들은 중국인들의 조상숭배 전통과 풍습을 훼손하지 않았고,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유교의 상제(上帝)와 같다하여 하나님을 천주(天主)로 부르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미니칸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그러한 예수회의 선교방식에 반대 입장을 취했고, 이 문제는 나중에 로마교황청과 중국황실과의 갈등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그 결과 교황 클레멘트 2세는 1715년 3월 19일에 교서를 발표해 전 세계 가톨릭 교인들로 하여금 조상제사를 금하게 했다.  1784년에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땅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이승훈, 정약용, 이벽, 권일신 등은 교황청의 지침대로 조상제사는 하나님 숭배에 반대되는 미신이라고 가르쳤고, 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게 되었다.  소위 천주학(天主學)과 유학(儒學)의 갈등이 한국 땅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권력층은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교(邪敎)라고 박해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온 가톨릭은 1939년에, 교황 파이우스 12세(Pius Ⅻ)에 의해 조상제사를 허용하였다.  교황청은 “문화와 전통적 습관의 의미가 바뀌었으므로 조상제사는 하나의 시민적 미풍양속일 뿐,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의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은 전통문화에 더욱 개방적인 입장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전통적 제사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에 서 있다. 가톨릭 보다 100여년 후에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조상제사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마펫(Maffett) 목사는 1893년에 신자의 규범을 만들어 세례훈련의 교재로 삼았는데, 그 규범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신(邪神)우상숭배 금지, 조상제사 폐지, 주일성수, 부모공경, 축첩(蓄妾)엄금, 가정의 순화(자녀에 대한 예우), 음주 도박 도둑질 간음 거짓말 등의 악습폐지, 근면성실하게 일해 가정생계를 풍족히 할 것 등.”(고려대 민속문화연구소 편, 한국문화대계, 제6권, 593쪽).  원입교인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3개월 동안 이러한 교육을 시킨 후 그 내용을 지키기로 서약하면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 개신교 역시, 가톨릭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겼고, 그 관념적 뿌리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제사문제가 크게 사회문제가 된 것은 1920년의 일이다. 동아일보 1920년 9월 1일자 보도에 의하면, 경북 영주에 살던 권성화라는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조석상식(朝夕上食)을 폐지하였다.  그의 아내 박씨는 효성이 극진하여 시어머니의  조석상식을 지성껏 모셔왔는데, 남편이 이를 금하자 불효(不孝)의 죄를 죽음으로 갚기로 작정하고, 시어머니의 신주(神主)를 뒷동산에 묻은 후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사건을 동아일보는 “애매 무죄한 기독교의 희생자! 남편이 예수교를 믿어 상식(上食)을 폐한 결과 며느리가 대신 죽어” 라는 표제로 대서특필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제사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온갖 비난이 기독교에 퍼부어졌다.  이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 기자가 당시 YMCA 총무였던 이상재선생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는 조상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동아일보는 “조선의 제사는 일신사상(一神思想)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선조기념과 우상숭배는 별개의 것이다.” 등의 제목의 기사를 3회에 걸쳐 개제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설도 있었는데, 그 내용의 주요 부분은 지금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제사란 선조의 영혼을 위로하고, 망각하지 아니하고 사모하는 예(禮)인즉, 예수교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이상, 그 영혼 앞에 절하는 것이 왜 미신이며 우상숭배인가? 예수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대개 무식한 천민들만이 입교했기에 선교사들에게 조선문화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결과 선교사들은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가르치게 되었다.  만약 초대 교인들이 지식인들이었다면, 제사의 유래와 정신을 바르게 선교사들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제사의 폐단은 고쳐나가야 하되, 예수교인들이 제사를 우상숭배로 아는 것 역시 고쳐야 한다.”(1920년 9월 10일자 동아일보 사설)  이 사설은 유학자 출신 기독교인이 썼다고 알려져 있고, 당시 지식인들의 생각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2. 유교적 제사의 근본정신 유교적 제사의 근본정신은 효(孝)에 있다. 유교에서는 효를 모든 덕의 근본이요 최고의 선으로 본다.  공자는 효를 덕의 근본으로 가르쳤으며, 모든 가르침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덕치주의(德治主義)의 바탕이 되는 가족제도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부모공경을 하늘공경과 동등시하여, 부모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고 했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인륜(人倫)이라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天倫)이라 하여, 효를 종교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이러한 효의 종교성이 죽음에 대한 유교의 독특한 이해와 연결되어 부모 생시(生時)의 효가 사후(死後)에도 계속되어 조상숭배인 제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가장 구체적인 효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효경’(孝經)의 기효행장(紀孝行章)에서는 효의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는 중에 부모 사후에도 상중(喪中)의 공양을 비롯해서 춘추(春秋)의 제사는 반드시 정결하고 근엄하게 행할 것이며, 사후의 섬김 역시 생시에 섬김 같이 지성으로 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제사의 근본정신은 조상의 신이 제사를 흠향(歆饗)하기 때문도 아니고, 또한 복을 기구(祈求)하기 위함도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서 생명의 본(本)이신 부모와 선조를 바르게 섬기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교사상을 정치이념으로 하여 생활윤리가 확립된 것은 이조시대부터다. 그러나 유학(儒學)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서기 640년경부터인데,  당시 당태종이 경학(經學)을 장려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학생을 모집했고, 이 때 신라, 고구려, 백제에서 젊은이들이 당나라에 가서 학문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설총, 최치원, 최충, 정몽주, 권근과 같은 훌륭한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고려말기에 이르러 불교계가 타락하고 사회적 혼란과 질서의 문란이 가중되면서 새로운 지도이념이 필요하게 되었고, 충효(忠孝)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는 당시의 조정(朝廷)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학(儒學)이 모든 분야에서 중추(中樞)를 이루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지만, 이조시대부터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사대부 가문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4대조(四代祖)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 때부터 효가 모든 윤리적 덕목의 근본이 되고, 인간의 백행지원(百行之源)이 모두 효에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효는 충(忠)보다 앞선다.  그래서 효를 강조한 나머지 “효자의 가문에서 충신을 구하라.” 또는 “충신의 집에서 효자난다.”등의 말들이 생겨났다.  효 가운데서 가장 으뜸은 부모공경이며, 살아서는 예(禮)로써 부모를 섬기고, 죽어서는 제(祭)로써 섬기라고 가르쳤다.  즉 부모에 대한 효는 부모의 생존시는 물론이고, 죽은 다음에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사자(死者)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하고, 이미 죽은 부모 섬기기를 산 부모 섬기듯 하라”는 논어의 가르침은 효의 근간이었고, 천륜(天倫)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사후에까지 연장시켜 제례(祭禮)로써 효를 다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제사는 어버이 생시에 미처 다하지 못했던 봉양(奉養)을 사후에 자식된 도리로서 뒤쫓아서 하는 효도의 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제사를 책임 질 아들이 없는 것은 조상에게 불효 중의 큰 불효였다.  이러한 유교의 제사문화는 당연히 남아선호사상을 불러 일으켰고, 여자의 임무는 오직 남편가문의 대를 이어서 제사를 드려줄 아들을 생산하는 것이 되었으며,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여인은 아내로서의 자격미달에 해당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결국 일부다처제를 장려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대리모(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어야 조상에게 면목이 서게 되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요즈음 우리나라 여성계에서는 호주제 폐지운동이 활발하다. 호주제 폐지는 여자도 호주가 될 수 있고,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도록 개정하는 것인데,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적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딸도 제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인데, 유교입장에서는 천년 이상 내려온 전통을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3. 제사와 추도예식의 근본 차이 앞에서 언급한 유교적 제사와 기독교의 추도예식에 근본적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예배의 대상문제다. 유교적 제사에서는 조상의 기일(忌日)을 맞아 후손들이 제사상을 차려놓고, 신위(神位)를 올려놓고, 절을 올리면 죽은 조상의 신이 그 자리에 와서 후손들의 절을 받고 음식도 먹는다는 신앙적 관념에 뿌리를 두고 그렇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예배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조상의 기일을 맞이하여, 먼저 가신 그분을 추모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독교 제사의 근본정신이다.  즉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서로 달라서, 유교에서는 조상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고인의 영혼은 추념(追念)과 감사와 위로의 대상이지, 유교에서처럼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근본 차이가 있다. 이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자.  유교적 제사에서는 강신(降神)순서에서 돌아가신 보모의 위(位) 앞에 분향(焚香)하고, 재배(再拜)한 뒤, 꿇어앉아서 술을 따라 세 번 부어드린 뒤, 고사(告辭)를 읽고, 다시 재배(再拜)를 드린다.  이때에 제주(祭主) 이하 모든 사람이 절을 두 번씩 올린다.  고사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제 영원히 돌아가신 때를 맞아 감히 신주(神主)를 정침(正寢, 제사지내는 방) 안에 모시기를 청하고자 추모하는 내용을 올립니다.” 쉽게 표현하면, 조상의 신이 이곳에 임재(臨在)하셔서 우리의 정성을 받아달라는 뜻이다.  기독교적으로 이것은 성령임재의 기원(Epiclesis)에 해당된다.  그리고 조상에게 술과 음식을 권하는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유식(侑食) 등의 순서가 있는데, 음식을 권하는 축문(祝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0년 0월 0일 효자 000는 감히 고합니다. 해가 바뀌어 000님이 돌아가신 날이 또다시 돌아오니,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끝이 없습니다.  이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청주와 여러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절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조상의 신을 음식상에 초대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볼 때 유교의 제사에서 숭배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조상신(祖上神)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러한 조상신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참된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4. 제사에서 절하는 문제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로서 제사에서 절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초창기에는 당시 선교사들이 조상숭배에 대해서 얼마나 강하게 반대했던지 무엇에나 허리를 숙이고 절하면 그것을 우상숭배로 본 웃지 못 할 일화도 있다.  신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객지에서 돌아와 부친께 엎드려 절을 하니 그 아버지가 화를 내며 “이 무슨 참람한 짓이냐? 내게 절을 하다니, 신학교에서 십계명을 범해도 좋다고 가르치더냐?”라고 호통쳤다고 한다(전택부, 토박이 신앙산맥, 96쪽).  제사에서 절하는 것을 우상시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반대이유로 인용한다.  그러나 그 계명은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지 말라는 뜻으로써 당시 중동지역 이방 신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즉 이방종교들이 자기네 신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절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며, 따라서 이 말씀을 부모공경에 적용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  우상을 섬기는 것과 조상에게 절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톨릭에서는 1939년에, 교황 파이우스 12세(Pius Ⅻ)에 의해 조상제사가 허용되었다.  조상제사를 하나의 미풍양속일 뿐, 종교적 의식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개신교의 조용기목사 역시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것을 긍정한 적이 있다. “부모는 죽어서도 부모인데, 그 부모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산 부모에게 절하듯이 돌아가신 부모에게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의 상당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산 부모와 죽은 부모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 부모는 인격체이기 때문에 잘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죽은 부모는 인격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차려놓고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그 행위가 종교적 숭배의 차원인가, 아니면 부모공경의 차원인가에 있다.  분명한 것은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신에게 절을 올린다는 신앙적 신념을 가진 채 절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국기에 경례하는 것도 우상숭배라고 가르치는 사이비 종파도 있는 판이니, 신앙적 입장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조상숭배가 아닌 부모공경이라는 입장에 분명히 서있다면, 절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가톨릭의 입장대로, 조상제사는 이미 종교적 의식이라기보다는 조상공경의 미풍양속이라는 입장에 확고하게 서있다면, 제사에 참여하고 절하는 모든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각 나라마다 인사문화가 다르고, 윗사람에 대한 예절문화 또한 다르다.  우리는 윗  어른에게 예를 갖춰 인사드릴 때 큰 절을 올린다.  악수나 포옹 보다는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우리 문화에 맞는 정중한 인사법이다.  따라서 죽은 조상에 대한 인사방법 역시 서서 기도만 드리는 것 보다는 절을 올리는 것이 우리 문화에 맞다고 본다.  물론 온 가족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조상을 추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전통적 제사문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족화합에 저해요인이 되는 것은 결코 예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보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문화와 전통에 따른 예절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먼저가신 선조들을 추모하면서,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형제자매 친지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혈연공동체인 가족의 유대와 화합에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선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여서 확실하게 해 둘 것이 있다.  부모공경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돌아가신 부모 보다는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효성과 공경을 바쳐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죽은 조상에 대한 언급은 성서에 그리 많지 않은데 비해, 살아계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은 많이 나온다.  행여라도 부모님 살아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을 죽은 다음에 제의(祭儀)로서 보상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에게 지극한 정성과 효성을 바치는 것이 기독교적 효도의 핵심이다.     ☞ 민들레성서마을 http://mindlle.com ☞ 김재성의 <느낌이 있는 성서읽기> 클릭!! ☞ <민들레홀씨>에게 한마디 보내기 클릭!!    134-825 서울 강동구 명일2동 41 삼환@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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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강영선
  표징의 신앙 - 성숙한 신앙
표징의 신앙-성숙한 신앙
요한 4: 46-53절/20: 29절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40년 안팎의 옛날의 일이자 사실이었으니까 털어 놓아도 괜찮을 듯 하다. 실은 내가 교단의 목사고시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 면접과정에서 생긴 일화다. 장소는 성남교회 1층 유치부실(?)이고 출연진은 총회 고시부 목사 6, 7명과 한 사람의 수험자다. 그 분들은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았는데 수험자인 나는 유치원생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 더 초라하고 위축되는 듯 했다. 내 순서에 앞서 그 작은 의자에 앉았던 이는 문동환 박사 그 수험자로 기억한다.
  그날 핵심질문은 어떻게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가? 즉 소명감에 관한 질문이었다. 고시부 목사들은 화끈한 대답을 듣기 원했고 사실 나도 그런 대답을 했어야 했다. 가령 목사로 나서지 않고는 내게 화가 미칠 것 같았다든가? 꿈결에 혹은 황홀한 상태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든가, 아니면 성서를 읽다가 가슴이 벌렁거리고 뜨거워 견딜 수 없는 체험 속에서 하나님이 사명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던가, 하여간 평생을 목사로서 살겠다는 강한 소명의식을 내비쳐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목사님들이 묻지도 않는 가상 질문을 스스로 말하고 대답하는 식으로 일관했다. 가령 ‘공산당에게 잡혔을 때 나는 복음을 위해서 그들에게 순교를 당할 수 있다는 대답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겠다. 가령 시골에서 한 달에 보리 3말 생활비를 받아도 목회할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 하겠다’ 식의 대답을 한 것이다. 결과는 뻔한 것! 낙방이었다.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그런 대답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해 왔는데!  꼭 같은 대답을 앞으로 7년을 계속하리라! 그 이듬해 나는 같은 장소에서 작년과 같은 심문관 목사들 앞에 작은 의자에 앉았다. 한 분이 예의 목사소명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나는 작년에 드린 대답과 같다고 했다. 답답했던지 스승이었던 김 목사가 ‘혹 꿈에서라도 어떤 체험을 한 적이 없는가?’고 했을 때 나는 그런 일 없다고 했다. 하여간 나는 또 떨어졌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후에 고시위원회의에 참석한 장공(長空)이 ‘내가 그의 성격을 잘 아는데 합격시키라’고 했다고 들었다. 그 덕으로 고시위원회에서 면접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꼬리표가 붙었다. 즉 소속 노회에서 재심사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Name: 황성규
  자녀들에게 원체험을!
자녀들에게 원체험을!
마가복음 10:13-16
1. 2005년 4월 부활절 다음 주일에 제자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점심 후 목사실에서 환담을 하는데, 초등학교 4, 5학년쯤의 남학생이 목사님을 찾아 왔다. 손님들이 있어서인지. 문간에서 목사는 아이 머리를 감싸고 소년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한 후 돌려보냈다. 주일 예배후면 언제나 그렇게 한다고 했다. 매 주일 계속된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의 인성과 신앙 형성에 그 일이 어떤 결실을 가져올까? 속으로 자문했지만 지금 그 대답을 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훗날 청년-장년이 될 그의 머리를 감싼 목사의 손, 그리고 간절한 기도는 그에게 “원체험”이란 이름으로 남을 것이란 것은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2.가톨릭의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Karol Wojtyla)가 지난 4월 3일에 선종했다. 58세 젊은 나이에 교황이 되어 129개 나라를 방문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 업적의 객관적인 평가는 그의 장례식에 국가 대표 급 조문객 200명을 비롯해서 100만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후 그의 생애가 영상과 언론매체로 여러 측면에서 조명이 되었다. 그의 업적이 거론되면서 자주 “원체험”이란 말이 쓰였다. 그가 이룩한 업적의 그 뿌리에는 다양한 경험이 있다. 그는 조국 폴란드가 공산화 되었을 때 지하신학교에서 공부하여 사제가 되고 대주교로서 사목활동을 했으며,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살해당했지만, 교황은 고향 바도비체에서 유대인 소년들과 격의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공장에서 노동자로서 살기도 했다. 교황이 1993년 유대인과의 2000년간의 반목을 정리한 것, 이 땅의 노동자들,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향한 관심 그리고 20세기 말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의 몰락 혹은 그 퇴조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 등은 그가 일찍 몸소 체험했던 이른 바 “원체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3.1966년 10월에 타계한 심원 안병무 선생은 신약학자요 민중신학자였다. “역사의 예수”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평생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알고 ‘예수 살이’ 하고 싶었던 분이다. 그가 살아내고 싶은 청빈의 삶의 동기도 예수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말한 “원경험”의 문맥을 위해서 좀 길게 그의 말을 여기 인용한다.
Name: 황성규
  평화: 어찌할 것인가?
[아래 글은 한국기독교장로회 홈피(www.prok.org)에서 마을지기가 옮겨 왔습니다.]
산상설교의 팔복선언 가운데 첫째와 마지막 여덟째는 바야흐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주민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둘째에서 여섯째까지는 현재의 비참한 처지가 역전되거나(슬픔 → 위로; 주리고 목마름 → 배부름) 마땅한 보상을 받음으로써(온유함 → 땅을 차지함; 자비함 → 자비를 받음; 마음이 깨끗함 → 하나님을 봄) 하나님의 백성이 개인적으로 누릴 복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일곱째 복은 특이하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구약성서에서 때로는 ‘천사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뜻했다(신 32:6; 호 1:10). 신약성서에서는 새 시대의 주인공(마 5:44-45) 또는 참 인간(롬 8:19)을 뜻한다. 성차별적 표현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곱째 복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주민과 동의어이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주민이 될 것인지는 첫째와 여덟째 복 선언에서 말했다. 일곱째 복 선언은 하나님 나라 주민이 될 사람의 의무/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복 선언에 제시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필자가 독일에 가서 맨 첫 학기 지도교수의 세미나 수업 셋째 날쯤이었다. 그 때에 스웨덴 신학자 C교수가 독일에 방문 중이었다. 지도교수가 자기 친구인 C교수를 세미나에 초청하여 특별 강의를 부탁했다. 그가 한 시간 내내 강의한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팔복 선언의 일곱째 복 선언에 나오는 ‘에이레네포이오이’라는 낱말을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들’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 낱말은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오이’(=만드는 사람들)의 합성어이다. ‘에이레네포이오이’는 무엇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가? 이 의미를 밝히는 것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먼저 여기에 사용된 ‘에이레네’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에 들어 있는 ‘만들다’라는 동사가 ‘평화’라는 명사를 목적어로 삼는 경우에 무엇을 뜻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손쉽게 직역해서 사용하는 식으로 ‘평화를 만들다’라는 표현이 어법상으로 타당한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1. ‘평화’냐 ‘화평/평안/평강’이냐?
신약성서에 ‘평화’를 뜻하는 헬라어 낱말 ‘에이레네’(eirene)가 92회 사용되었다. 영어 성경 AV(=KJV)는 이것을 peace로 89회 번역했다. 단지 3회만 다른 낱말을 사용하여 번역했는데 한 번은 행 7:26에서 싸우는 사람을 화해시켜 하나가 되게 했다는 뜻으로(set at one), 다른 한 번은 행 9:31에서 안정을 누렸다는 뜻으로(had rest), 또 다른 한 번은 행 24:2에서 태평/평안을 누린다는 뜻으로(enjoy great quietness)로 번역했다. 마지막 두 경우도 나머지 모든 영어 번역본 성서들은 peace를 사용하여 번역했다(NEB, NRSV, NIV, NASB, NAB, JBE, TEV, CEV 등등).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다”(눅 11:21)라는 구절에 사용된 ‘안전하다’(=en eire?e?를 to be safe로 번역하거나(NEB, NRSV, NIV, NAB, TEV, CEV) 또는 to be undisturbed로 번역하기도 했지마는(NASB, JBE) 몇몇 성경은 이 어구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peace를 사용하여 to be in peace로(AV, Rheims) 또는 to be at peace and to be secure (Amplified Bible)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헬라어 eirene라는 낱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거의 기계적으로 peace라는 낱말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우리 말 성경은 이 eire?e偏遮?낱말을 번역할 때에 ‘평화/화평/화친/화목/화해/평안/평강/안정/안전/태평/무사/안심’ 등등의 여러 가지 낱말로 번역했다. 헬라어 eirene와 영어 peace라는 낱말이 문맥에 따라서 우리말의 이 여러 가지 낱말이 뜻하는 함의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성경이 eire?e片?문맥에 따라 그 의미를 구분하여 이오 같은 여러 가지 낱말로 번역한 것이 과연 원어의 의미를 살려 내는 데 기여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Name: 김창락
  그리스도교와 종말론
제목없음 
0. 한 처음에 ...가/이 있다.
어느 등산가는 말했다: “산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산에 오른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역사의 종말에 관하여 논의하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이 논의의 출발선에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자. 역사의 종말은 인간의 경험적 인식의 영역을 넘어 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등산가 앞에 어떤 산이 가로 놓여 있듯이 자명한 것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대체 역사의 종말이 있느냐 없느냐는 근본적인 물음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말은 우리의 신앙의 종속 변수인가? 그럴 수 없다. 신앙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개인의 정신의 소산물이며 신앙은 은혜의 선물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다. 이 부르심에 대한 순종적 응답이 신앙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종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확고한 한 내용물로 등장한다. 판도라 상자 신화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희망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에 근거해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근본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적 삶을 영위하려는 출발점에서 무엇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가?
0.1. “콩죽은 끓어오르고, 소는 콩밭에 들어가고, 갑자기 애는 방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는데 설사는 쏟아져 나오려 하고....”
이 여자는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처지에 빠져 있다. 급박하다. 이것도 당장 처리해야 하고 저것도 당장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우선 순위를 정하여 차례대로 처리하면 될 일들이 아니다. 어느 하나를 먼저 해결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다 망치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그 일들을 동시에 처리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지 않은가. 이 위기를 극복해 낼 가능성은 도대체 있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Name: 김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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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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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고호(Vincent van Gogh)의 말입니다.
몇 년 전에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죠. 위의 고호의 말에서 '화가' 대신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 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 그림을 클릭하면 더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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