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난 아이들의 일기와 학습결과물을 엮어서 문집을 만들어주곤 했다. 매년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 좀더 정이 드는 해가 있다. 무엇이든 마구 해 주고 싶은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또 때로는 해주어야겠다고 3월부터 맘을 먹었지만 중간에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문집을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학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담임이 서로 한 마음일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다 인터넷이 나와서 학급 홈페이지를 운영하였고, 홈페이지의 엄청난 글과 사진을 두고 다시 문집을 엮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최근에는 홈페이지의 자료를 cd롬에 저장하여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2학년이라 아이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문집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1년에 한번 만들었는데, 올해는 매월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바로 부모님께 보여드려서 신뢰를 높이고 싶었고, 아이들의 하루하루 나아지는 모습이 소중하고, 순수한 글들이 너무 좋아서 보관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에는 그 소중한 글을 이미 잃어버려서 기록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월 문집을 보시고 학부모님들이 지으실 표정을 생각하면서 혼자 좋아한다. 어쩜 그 맛에 열을 내면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연령이 어려서인지(?) 아직도 남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에그~ 언제 철이 들는지…….
문제는 돈이다.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내 생각대로 학부모님들이 과연 좋아만 하셨을지 궁금하다. 이 문집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누구 돈으로 만들었을까? 의혹의 눈으로 다들 보시는 것은 아닌지…….
학부모님께 문집을 보내드리면서 영수증을 복사하여 편지를 썼다. 돈이 얼마가 들었고, 일인당 얼마씩 주시면 도움이 되겠다. 여유가 있으시면 조금 더 내셔도 된다. 부족한 것은 모두 선생님이 부담한다. 그러나 그 편지는 지금 폐휴지통에서 잠잔다.

퇴근을 서두르는데 작년 제자 둘이 교실로 찾아왔다. 교복을 입지 않았는데도 벌써 중학생 티가 난다. 키도 많이 컸고, 한창 자라느라 얼굴도 예전의 귀염성이 많이 줄었다. 초등학교 때도 J와 D는 단짝 친구였는데 아직도 그렇게 함께 다니나보다.
키가 작고 귀염성이 넘치는 J를 보자마자 옛 기억이 났다. 결코 잊지 못할 일이다.
작년 2월 아이들의 졸업직전에 J의 엄마를 면담했다. 방학동안 단 한 가지의 숙제도 하지 않은 J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내가 청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떤 엄마이기에 아들을 그토록 때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가을이었다. 아침에 등교하는 J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정말 감자를 주물러 놓은 듯 형상이 어긋났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맞아도 아주 많이 맞은 듯 했다. 깜짝 놀라서 누구에게 맞았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맞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아이 앞에서 엄마를 흉 볼 수가 없어서,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전자 오락하는 것을 들켰구나” 했다.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화가 많이 나셨구나. 정말 아이는 숙제를 전혀 하지 않는다. 벌을 받아도 매를 맞아도 전혀 반응이 없다. 언제나 모른다고 소리를 지를 뿐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처음엔 잘 모르더라도 알려고 노력하고, 1년이 지나면서 몰라보게 실력이 늘었는데 이 아이만큼은 언제나 제자리였다.
엄마가 너무 속상한 나머지 그렇게 하셨나보다 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렇다고 어떻게 이렇게 때리냐? 친 엄마 맞나? 도대체 무엇으로 때린 거야? 손으로 때려선 이렇게 흉하게 될 리 없는데…….몽둥이로 때렸나? 혼자서 별 생각을 다하면서 아동학대로 신고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해 봐야겠다고 하자 아이는 펄쩍 뛰었다.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하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못하게 했다. 끝내 편지까지 써놓고 갔다. 제발 절대로 전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학날이다. 또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교사가 좋은 것은 이렇게 1년이면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처럼 다시 출발 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언제나 같은 업무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또 같은 내용을 언제나 가르쳐야 한다면 또 얼마나 따분할까? 사람들은 전문성 운운 하겠지만 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참 싫어한다. 언제나 새롭게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만나고, 처음 하는 일처럼 하고 싶다.
작년에 6학년 담임을 하였는데 교감선생님께서 또 6학년 담임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학교 사정상 내가 6학년을 담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번 가르친 것이고, 자료도 많고 좀더 쉽게 1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부탁을 물리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난 가슴이 답답하고, 아이들을 졸업 시키는 일이 심드렁해 졌다. 졸업을 하는 아이들을 다시 가르치는 느낌이 드니 이별도 슬프지 않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도 생기지 않았다.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날 기운 빠지게 하곤 한다. 늘 같은 일을 하는 많은 직업이 있을 텐데 다들 어떻게 하는지…….
올해 난 2학년 담임이 되었다. 학급담임 발표하는 날 아침에 역사가 새롭게 바뀌었다. 6학년 부장선생님이 교감이 되신다면서 내가 6학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선생님이 하고 싶어 하는 2학년 담임이 된 것이다. 갑자기 가슴을 누르던 중압감이 씻은 듯 날아가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마음을 곱게 쓰니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교감선생님의 청에 거부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성을 탓하던 난 갑자기 자신의 착한 일을 내세우며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빨리 2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아유~ 귀여운 것들…….얼마나 귀여울까? 작은 아이들을 보면 아 내가 바로 이런 아이들을 가르친단 말이지? 하면서 새내기 선생님인 양 들떴다. 참 다행이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변모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일년 내 가르친(가르쳤다기 보다는 싸운) 아이들과 다시 또 1년을 보내야 하는 느낌은 정말 고역이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 신선한 마음으로 설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젠 귀여운 아이들 앞에서 귀여운 목소리로 소꿉놀이 하듯 1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 첫 만남에서 유감없이 아이들은 내게 응답했다.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선생님, 난 이 애랑 짝꿍 하고 싶어요.”

드디어 모두 떠나갔다.
오늘은 홈페이지에 일기도 올라오지 않는다. 졸업을 했건만 아직 아쉬운지 몇 몇 아이들의 일기가 올라왔는데 오늘은 그 일기도 끝났나보다.
어제는 졸업한 제자들이 학교에 찾아왔다. 졸업식 한 후의 어수선한 교실을 청소하고 있는데 상린과 병철이 들어왔다.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야, 너 졸업식에 왜 운동화 신고 들어왔니? 실내화 가지고 오라고 했잖아. 축구하던 발이라 네 자리에 흙이 엄청나게 쌓였더라.”
“아니에요. 철우가 운동화 신고 들어왔어요.”
난 여전히 꾸중부터 하고, 아이들은 변명부터 한다. 졸업식 날 아침에도 축구를 잊지 않던 아이들이 그대로 교실로 들어와 온통 흙이다. 거기다 학부모님들이 교실에 신을 신고 들어오셔서 전날 왁스칠까지 하며 준비한 교실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검은 비닐을 준비해서 덧신으로 드려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덕분에 혼자서 청소를 하느라 온몸에서 땀이 났다. 곧 새로운 아이들이 교실의 주인이 될 텐데 이렇게 넘겨 줄 수는 없어 물걸레로 대청소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졸업식 노래를 연습할 때부터 눈물을 찍어내던 아이들이 눈물을 겨우 참아내며 졸업식을 마치고 이젠 다른 이에게로 갔다. 졸업식장에서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워놓고 칭찬과 덕담을 해 주고 모두 상장을 주었다. 돌잔치 이후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는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학식 때는 아버지는 오시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졸업식에는 가족 모두가 동원된다.

열심히 비디오로 촬영하는 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구부정한 허리로 손자의 졸업을 축하하는 할아버지, 곱게 단장을 한 어머니, 처음 만나는 멋있는 신사가 우리 반의 학부모였다니…….아이들의 얼굴과 부모님들의 얼굴을 비교하며 누가 누구의 어머니고, 아버지인지 맞추어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아이와 다르게 너무나 세련된 어머니, 아버지…….

작년 아들의 졸업식 생각도 났다. 아들 얼굴을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을 용감하게 헤치고 학의 목을 해서 유리창을 기웃거리던 기억, 어떻게 하든지 담임선생님의 사진이라도 찍어 두어야 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셔터를 눌러대던 기억, 상장 받는 모습을 찍으려 많은 애를 썼지만 시험지 나눠주듯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던 아쉬움도 생각났다.
부모님과 아이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싶었다. 부모님들이 사진 찍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경험을 한 까닭이다. 6년 동안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한 것을 사진 한 장으로 모두 갚으려는 안간힘을 이해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의 상장을 하나하나 읽어주고 교장 선생님이 졸업장 주듯이 엄숙하게 주고받았다.

10년 전 6학년 생활이 다 끝날 무렵, 12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선생님. 해양소년단 아이들이 모두 도망쳤어요.”
“무슨 소리니?”
“우리 반 해양소년단 아이들이 특활 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모두 오락실 갔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 반 아이들만 도망갔단 말이지? 더구나 해양소년단들이? 그 무섭기로 소문 난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반에서 말이다. 이해 할 수가 없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모두가 짜고 간 것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일을 꾸몄을까?
아이들을 찾으러 나선 몇몇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주변 오락실에서 7-8명의 도망자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순순히 잡혀 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니?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면 각오를 하고 한 짓이야?”

책 읽어주는 친구들
곤지암초등학교 1학년 6반 이지현
2000년 12월 16일 토요일
나는 책 읽어 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책을 맨날맨날 읽어조서 그렇다. 그리고 범모는 어떤 책을 읽어주냐면 웃겨씨, 키다리씨, 빨라씨, 느려씨, 그리고 또 있는 데 까먹었다. 영지도 맨날맨날 읽어주고 지원이도 언제 책 두 권을 읽어 주었다.
나는 책 읽어 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자벌레
2000년 11월 14일

드디어 방학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아이들의 일기에서도 온통 ‘드디어 방학’이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나도 같이 드디어 방학이 된 것을 즐긴다.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 전에 방학이 시작되었겠지만, 봄방학의 폐해가 여론화 되면서 교장의 자율권에 의해 방학도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송년회를 학교에서 하였고, 2002년 겨울방학은 끝내 없었다. 우린 2003년 1월 1일부터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ㅎㅎ
방학식이 끝나고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k에게 병문안을 갔다. 우리 반 아이들 20명과 함께였다. 아이들은 모두 손에 선물과 편지를 들었고, 난 교장선생님이 주시는 봉투(26만원)와 학부모님 두 분이 보내오신 봉투(9만원)를 들고 갔다. 또 참여하지 못한 몇몇 학부모님은 다음에 직접 가시겠다고 연락하셨고 이번에 시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방학 중에 찾아보겠다고 입을 모았다.
교통사고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고 해서 이렇게 교장선생님, 학부모, 아이들이 모두 나서는 모습이 참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드디어 공교육이 정상화 된 것 아니냐고 희망을 품는 분도 있을지도……. 그러나 이 땅의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내가 아는 한 초등학교에서의 공교육은 언제나 정상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주신 돈은, 사업을 하시는 한 학부모가 바자회를 통해 불우이웃돕기에 써 달라고 여러 벌의 옷을 보내오셨는데, 선생님들이 한 벌씩 사셨다. 그 돈으로 컴퓨터를 사서 북한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머지 돈을 우리 반 아이에게 주신 것이다.
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언제나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작년 제자도 교통사고로 더 크게 다쳤지만 이런 수선을 떨지는 않았다. 두어 번 병원에 찾아간 것이 전부이다.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처음 학급을 맡으면 각각의 개성이 보이지 않고 모두 같은 표정으로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러다 차츰 눈치 빠른 아이들이 내 주변에 서성이면서 자기를 드러내고 하나 둘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처음 그 표정으로 뚱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이 몇은 꼭 있게 마련이다. 선생님이 자기 같은 아이를 관심 갖기나 하겠냐는 표정이다. 친구들이 자기 같은 아이를 신경이나 쓰겠느냐는 표정이다. 그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한 듯이 쉬는 시간이면 혼자서 학원 숙제를 하기도 하고, 그저 얌전히 앉아 있다가 수업을 하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 종일 한번도 웃지 않은 채, 한번도 친구와 대화를 하지 못한 채…….
3월부터 학교생활의 중요한 장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온 나는 사진 속에 정지된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 옴을 어쩌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문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 보다 오히려 얼굴이 더 곱고 예쁜 아이들인데 왜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것일까?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학습능력이 뒤떨어진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한 발표력이 없고 자신감이 없어서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이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칭찬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일 게다.
그런 아이들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본 것은 지난 봄 현장학습 때였다.
버스 안에서 여자 아이들끼리 머리를 헝클며 잡아당기고 장난을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교실을 벗어나니 그동안 공부로 주눅 든 것이 풀린 것일까? 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큰 싸움을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여자 아이들이 싸우면 이들처럼 머리를 잡아당기며 싸웠다. 그래서 이긴 아이의 손에는 상대 아이의 머리카락이 한 줌 뽑혀져 있곤 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똑 같이 싸우는데 웃으면서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뽑히지 않고 머리를 묶었던 머리끈이 손에 들려져 있을 뿐이다. 산발한 머리를 뒤로 묶기가 바쁘게 또 싸움을 걸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친구들도 웃었다.
왜 그들의 이런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고운 웃음을 난 행복에 겨워 바라봤다.
그렇게 예쁜 아이였는데 언제나 우울한 표정으로 언제나 같은 자리에 뚱하니 앉아 있었다니…….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이목구비의 위치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웃는 행복한 표정 때문인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검색

“선생님, 아빠께서 선생님께 선물을 좀 사다드리래요.”
“ 그래? 그런데 이미 네게 너무 감동적인 선물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 이젠 선물을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렴.”
아이는 웃으면서 “네”한다.
난 y에게 그렇게 감동적인 선물을 기대한 적이 없다.
지난 5월 강화도로 현장학습을 갈 때였다. 옛날에는 현장학습이나 소풍을 간다고 하면 아이들이 음료수도 제법 갖다 주고 과일 한 두개, 일회용 용기에 싼 김밥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하찮다고 생각했음인지 아니면 임원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작은 선물을 주는 아이가 별로 없다.
그런데 y가 내게 빵 두개와 음료수를 내 책상에 놓으면서 “아빠가 선생님 드리래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선생님을 챙겼단 말이지? 아, 왜 그리 기분이 좋을까? 난 이런 날이면 y의 도시락을 걱정하면서 누가 두개 정도 싸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y도 엄마의 빈자리를 감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에 아이들을 쳐다본다. 내게 도시락 하나 갖다 주는 친구가 없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옛날 인심이다. 아무도 도시락 하나 더 챙긴 아이가 없다.
아침을 건너뛰기 일쑤인 나는 y가 준 빵과 음료수를 그 자리에서 먹으면서 참 맛있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아빠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라고 부탁했다.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며칠 전 미술시간에 고무 판화를 했다.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고무판화를 할 땐 음각화로 많이 한다. 양각으로 하기엔 너무 힘이 드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꼭 양각을 고집한다. 특히 5,6학년 고학년에겐 양각으로 하도록 한다. 음각 보다는 양각이 제작자의 성취감을 높이고 판화의 참 맛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밑그림부터 아이들은 어려움을 느낀다. 종이와 달리 그림을 단순하게 그려야하고 상징적인 표현이 돋보이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또 판화의 특성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글자를 새기도록 한다. 거울을 보듯 좌우가 다르게 찍히는 것을 이해하고 글자를 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자기의 판화를 봐 달라고 주문한다.
‘선생님은 나의 어머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내 얼굴이 한 곳에 그려져 있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내가 어머니와 같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새기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아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글자를 새겼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아이가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판화를 하기 며칠 전에,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울었다.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아이는 얼굴을 돌리고 벌게진 얼굴로 훌쩍이고 나는 너무나 안타까움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하며 훌쩍였다.
우리학교의 시범학습 공개 전날이다. 내일 있을 공개 자료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전시실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회장아이가 전시실로 내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아이들이 싸워요. S가 칼을 들고 H를 위협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