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교수 에세이집이 나왔다. 내 글도 가운데 들어 있어서 반갑다..^^
<빈 칸 예수>
                                                                                김재성
결핍의 동기
결핍이라고 하면, 부족함이나 가난함과 연관되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관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결핍의 동기는 거의 모든 예수의 기적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흘이나 먹지 못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무리들의 궁핍함이 없었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이 없었다면, 기적적으로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는 결핍을 절망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일과 기적을 위한 기회로 보았습니다.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복음 13:24-30
김재성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신약학
심판에 중점을 두는 해석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이 본문에 이어서 다른 비유들이 몇 개 나오고, 그 다음 36-43절에는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만 따로 비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예수의 본래 말씀이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진 해석입니다. 예수의 처음 비유에서는 추수 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는 은혜로운 관점이 나오지만, 후대 해석 부분에서는, 악인은 불 아궁이에 들어가고 의인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고 하는 심판의 관점이 나옵니다.
지난 겨울에 꼼지락 거리며
논문 한 편을 신학과 실천에 기고했다.
인쇄되어 나온 것을 보니 기쁘다..^^
초록
마태기자는 가라지의 비유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본래의 비유에 정교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러한 해석을 따를 때, 설교자의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최후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거기서 인간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설교 주제들은, 예수의 주제가 아니라, 악한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규정해야 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예수는 알레고리적 해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였다. 포도원주인의 입을 통하여, 예수는 “둘 다 자라게 두라”고 하였다. 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는 것은 심판에 의한 구별보다는 하나님의 자비 아래에서의 공존을 제시한다.
카를 융의 심리학적 성서 해석
새 논문이 한 편 나왔다.
지난번 신약학회 콜로키움 때 요약판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완성된 것이 신학사상에서 나왔다.
쓰기는 작년 겨울쯤에 쓴 것 같은데..
  런던
1996년 1월 24일 1996년 1월 24일런던 첫째날
한 달 간 정든 세인트 앤드류 홀 앞에서어제 하루는 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쉬지는 못했다. 방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짐을 꾸려야 했고 또 아내는 돌아갈 짐을 꾸려야 했다. 런던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짐은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나누어서 이고 지고 버밍햄 내셔널 익스프레스 코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버밍햄 시내의 브리티시 에어라인에 가서 비행기 표도 확인하고 좌석도 창 쪽으로 정했다. 나중의 얘기지만 좌석을 창 쪽으로 해서 불편한 점도 많았단다. 코치 스테이션까지 가는 동안 끌고 가던 가방에서 요란하게 나던 딸딸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남아 있다. 점심으로 먹는다고 터미널에서 무슨 햄버거를 샀다. 차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점원 아가씨는 한가하게 햄버거 속을 데우고 있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서 사 가지고 오는데 차장 아가씨 힐끗 보더니 뜨거운 음식은 차에 들고 탈 수 없으니 짐칸에 넣고 타란다. 부아가 치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놓고는 먹지도 못하고 런던까지 빈 속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고 바깥 경치도 좋아서 그럭저럭 지루한 줄 모르고 런던까지 갔다. 겨울이라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보이는 푸른 풀밭과 한가로운 양떼의 모습이 우리가 영국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이 겨울에 이렇게 푸른 잔디가 있는 곳은 영국뿐일 것이다.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옛날에 봐둔 햄버거 가게에 가서 다 식은 햄버거를 좀 데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흑인 점원은 기꺼이 해 주었다. 커피를 사서 같이 먹으니 그런 대로 맛이 괜찮았다. 일단 라티머 콘그리게이셔널 처치로 전화를 했다. 저녁 6시경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니 좋다고 한다. 런던에서는 지하철을 튜브라고 부른다. 지하철이 다니는 터널의 모양이 둥그런 튜브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인근 빅토리아 역에서 튜브를 타고 스테프니 그린 역까지 별 어려움 없이 갔다. 교회에 도착하니 담임 목사가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인근에 음식점이 있다는 것과 숙소의 문을 여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런던의 명물 타워 브리지벌써 어두워지긴 했지만 시간은 아직 초저녁이다. 우리는 런던 밤구경을 하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나왔다. 25번 버스인데 옥스포드 스트리트로 해서 가는 것이다. 우리는 타워 브리지로 가기 위해서 그 전에 내렸다. 날씨가 좀 춥기는 했지만 런던의 밤거리를 보는 재미로 우리는 추운 줄도 몰랐다. 타워 힐 역인가 무슨 역인가를 지나서 얼마를 가니 타워 브리지가 나타났다. 푸르스름한 조명을 받아서 더욱 멋 있게 보였다.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기뻐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는 런던 타워가 역시 조명 아래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건물이 그렇게 살벌한 처형의 현장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타워브리지를 걸어서 건넜다. 그리고는 강을 따라서 걸었다. 강변에는 고급 레스토랑도 있었으며 또 여러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Cotton House라는 곳에 들어가 보았다. 그 안에는 독특한 구조물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지 원색 페인트를 칠한 철판으로 양복 입은 사람을 표현하였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서 사람이 다르게 보여서 재미있었다. 마침 그 안에는 무슨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잠시나마 사진 감상을 할 수 있었다. 그 건물에서 나와서 보니 커다란 군함 한 척이 강에 떠 있었는데 사실은 Belfast Musium이라고 하는 해양 박물관이었다. 그 군함은 해군에서 퇴역을 한 것이지만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참 걸으니 다시 다리가 나왔는데 아마 런던 브리지라고 했던 것 같다. 다리 위에서 한 청소부에게 St. Paul Cathedral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조금 더 가면 된다고 하였다. 벌써 다리도 아프고 춥기도 했지만 하나라도 더 본다는 욕심에 서로 격려하면서 걸었다. 그래도 이미 숙소를 잡아 놓아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여간 든든하지 않았다. 조금 고생은 했지만 웅장한 세인트 폴 성당을 볼 수 있었다. 밤이어서 우린 그저 겉 모습을 그것도 조명 빛 아래서 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런 대로 어떤 맛이 있었다. 뭔가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따뜻한 가로등 빛 그리고 동동 동인 목도리 같은 것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었다 하겠다. 베니스에서 산 그 목도리를 두른 것이 보기 좋아서 얼굴부분만 크로즈 업을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진이 제법 잘 나왔다. 사진 자체야 어떤지 모르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날의 모든 것이 생각나고 그날의 추위가 생각나는 것 같아서 난 그 사진이 잘 나온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지금 확대 사진으로 내 방 벽 제일 높은 곳에 걸려 있다.돌아올 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온 것을 후회했다. 런던 버스는 버밍햄의 그것과 달리 빨간 색이다. 한참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래도 튜브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탄 덕분에 밤 구경은 잘 한 것 같다. 교회 근처에 내려서 오다가 중국집에 들어갔다. 슈퍼가 이미 문을 닫아서 저녁을 준비할 길이 없었으며, 또 피곤하기도 해서 Take away라고 하는 중국 음식을 사가려고 한 것이다. 10파운드 정도를 내니 셋트 메뉴로 여러 가지를 주었다. 볶음밥에 콩나물 같은 것을 채운 무슨 롤하고 돼지고기 튀긴 것과 탕수육 같은 것 등을 주었다. 우리는 라운지로 가서 상을 차려 놓고 먹었다. 아내는 입에 맞는지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양이 많아서 내일 아침까지 먹어도 될 것 같다.
대영박물관 앞에서 1996년 1월 25일런던 둘째날오늘은 하루 종일 런던 시내 구경을 하는 날이다. 하루 종일이라지만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 네 시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리 많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런던에 오면 다들 본다고 하는 브리티쉬 뮤지엄, 이른바 "대영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가 오늘의 주요 방문 장소이다. 어제 먹다 남은 중국 요리 등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튜브를 타고 지도를 보면서 물어 물어 브리티쉬 뮤지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Boots라는 가게에 들러서 화장품 몇 개 하고 어머니 드릴 약을 좀 샀다.대영 박물관은 듣던 대로 굉장한 곳이었다. 과거에 제국주의를 하면서 식민지에서 탐욕적으로 죄다 훔쳐온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이집트를 식민통치 했다면 아마 스핑크스를 훔쳐왔을 것이며, 우리 나라를 식민통치 했다면 석굴암을 드러내서 옮겨갔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저렇게 큰 돌덩어리들을 어떻게 옮겨왔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와서는 분주히 뭔가를 적거나 그리고 있었다. 아마 그것이 방학 숙제인 모양이다.아내는 기원전 2, 3천 년 전의 도자기들이나 그 도자기 위의 원시적인 그림들 그리고 고대인들이 만든 인형들에 관심을 보였다. 말로만 듣던 파피루스를 처음으로 보았으며 미이라도 보았다. 내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슨 짐승의 상인데, 아마 기원전 몇 천 년 전에 사람들이 우상으로 섬기던 것들인가 보다. 옛 사람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끔찍한 상을 어떻게 섬길 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리는 개 대가리 혹은 늑대나 여우의 대가리 같기도 했으며 몸뚱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뱀의 형상을 한 어떤 우상도 있었다. 집체 만한 크기의 무슨 괴상한 사자상이나 전설적인 동물상들도 다들 신전에서 뜯어온 것이니 거의 우상에 버금가는 것들이라 하겠다. 그런 것들을 섬기고 때로 그들에게 사람을 산채로 제사드리기도 했던 고대인들을 생각하면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무지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대영박물관 안에서브리티쉬 뮤지엄은 하도 커서 하루에 다 보는 것은 무리였다. 카메라가 점점 무겁게 느껴질 무렵 좀 아쉽지만 우리는 다음 코스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뮤지엄 안의 커피숍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등으로 요기를 하고서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내셔널 갤러리로 들어가기 전에 커다란 사자상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영웅 넬슨 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웬일인지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순진한 나는 그 사실에 감동되어서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나중에 영어 시간에 유럽과 런던 여행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아이라 선생 앞에서 런던 여행에서 좋았던 것은 어디에서도 입장료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어디서나 높은 입장료를 요구해서 좀 언짢았는데 런던 브리티쉬 뮤지엄과 내셔널 갤러리는 다른 나라 어떤 뮤지엄이나 갤러리에 뒤지지 않는 것이었는데도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인상적이었다고 느낀 대로 얘기를 했다. 다른 학생들도 영국을 잘 모르는지라 별 대꾸가 없었으며, 아이라 선생도 웬일인지 별로 반론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연하게도 그날 우리가 방문한 곳이 모두 입장료가 없었을 뿐이다. 나중에 런던을 방문했을 때 가는 곳곳마다 엄청난 입장료를 요구해서 놀라기도 했고 내 판단이 그릇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날 당일은 우리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카메라를 갖고 들어가는 것은 허락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모든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암스텔담에서 고호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속이 상했을 때 런던에 가도 고호의 그림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위로를 받았었다. 바로 그 고호의 그림들이 있는 곳이 이곳이다. 그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과 밀밭 그림이 이곳에 있다. 그날도 한 두 시간 이상 많은 그림들을 본 것 같은데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고호의 그 그림들뿐이다. 그러니 역시 대작은 대작인가 보다. 나 개인적으로는 해바라기 그림보다는 밀밭 그림이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내가 본래 정물에보다는 풍경화에 더 관심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춤추는 듯한 밀밭의 푸른 물결과 푸른 하늘을 그렇게 잘 조화시키고 그렇게 환상적인 색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고호뿐일 것이다. 대작을 보다 보면 사진을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볼 때 어떤 강한 느낌을 받는다. 실제 그림을 보는 이러한 감동이 고호 그림 앞에서는 다른 그림들보다 몇 배는 더한 것 같다. 고호 그림의 사진을 보고는 도저히 원작 앞에서 갖던 그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고호 그림은 더욱 위대한 것이다. 그의 그림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며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어떤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난 그날 그 그림 하나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었다.
Name: 김재성
  에딘버러 첫째날
1996년 1월 21일1996년 1월 21일에딘버러 첫째날버밍엄 뉴 스트리트 스테이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에딘버러 행 열차에 올랐다. 좌석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있어서 넷이서 이야기하면서 가기는 좋았다. 앞 좌석에 김성재 교수와 이 신부가 앉고 맞은 편에 우리 부부가 앉았다. 김성재 교수는 참 이야기를 잘 하신다. 무슨 강연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국 역사, 스코틀랜드의 간단한 역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스개 소리도 잘 하셔서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어떻게 해서 남녀 사이에 가장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 답은 "질문공세와 질의응답을 통해서"이다. 맨체스타를 좀 지나가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셀리옥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셀리옥의 색이라면 붉은 벽돌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더 이상 붉은 색은 보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이 녹색이었고, 지붕들도 회색 빛 지붕들이었다. 그것들은 광활한 초원과 어울려서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차는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매우 돌아서 갔고 천천히 갔다. 점심 시간이 되어서 열차 안에서 파는 샌드위치 햄버거 커피 등을 사와서 함께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에딘버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다. 역에서 나오니 이무장이라는 한국 사람이 빨간색 자가용을 몰고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에딘버러에서 공부하는 한국 사람이다. 김성재 교수와 아는 사이라서 마중나온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차를 타고 이무장 씨 집으로 가서 저녁을 잘 먹었다. 이무장 씨 부인은 정성스레 음식을 차린 것 같았다. 아내가 선생님인 것을 안 이무장 씨 부인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아이들 교육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우리말을 잘 못하게 되거나 우리 문화와 역사에 무지하게 되어 나중에 한국에 가서 남들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외국에 살다온 사람들 자녀들 가운데 그런 경우가 허다하면서 은근히 겁을 주었는데 그러저러해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강사는 김성재 교수님에서 김순현 선생님으로 바뀐 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열띠게들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김 교수님은 다른 숙소로 가시고 우리는 이무장 씨 집에 오기 전에 예약해둔 B & B(Bed and Breakfast: 재워주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로 갔다. 내일은 요엘이랑 산야가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에딘버러 성을 본다.
에딘버러 시내의 모습들
  1996년 1월 22일에딘버러 둘째날B & B에서 먹는 아침 맛이 괜찮았다. 커피와 토스트에 치즈와 잼 그리고 계란을 주었는데 기숙사 음식보다는 훨씬 질도 좋고 맛도 있었다. 어제 밤에 우리는 피곤해서 일찍 잤는데 이 신부는 무슨 컬트 무비를 보았다면서 아침 먹으면서 내내 그 얘기를 해 주었다. 어제 이무장 씨가 권한 대로 오늘 아침에는 Holyrod Hill인가 하는 근처의 작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기암절벽이 있어서 멋이 있는 산이었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산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바람은 무척 세게 불고 있었다. 그렇게 추운데도 무슨 나무에 노란 꽃이 피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새들이 많았는데 기러기 같이 생긴 것들이다. 에딘버러는 항구이니 실제로 기러기였나 모르겠다. 좀 높은 곳에 있는 둥지에 아직 날지 못하는 것 같은 새끼 두 마리가 어미 새가 물어올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번에 데리고 오지도 못해서 마음에 걸리곤 하던 우리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에딘버러 시내가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였다. 에딘버러는 아름다운 옛 도시였다. 날만 좀 좋았다면 그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날씨가 나빠서 모든 색이 우중충했던 것이 좀 흠이었다.그 산을 내려오니 바로 Holyrod 궁전이 있었다. 이곳은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인 메리가 살던 곳인데 그는 수많은 적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또한 그 자신도 처형을 당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이 궁전은 건물 전체의 모양이나 내부 장식에서 단순하면서도 검소한 특징을 띠고 있었다. 전에 파리 근처에서 본 베르사이유 궁전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안내를 맡은 그 노인은 연신 입에 미소를 띠면서 뭐라고 농담을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설명을 잘 하였다. "저 의자는 프랑스에서 사온 것이며, 저 카펫은 인도에서 온 것이며, 저 시계는 몇 백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든 것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기계로 작동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에딘버러 시내는 거의가 돌로 지은 집들인 듯궁전과 옆에 붙어 있는 수도원을 보고 나서 지도를 보면서 에딘버러 카슬을 향하여 걸었다. 가는 도중에 많은 가게들이 있었는데 대개 울 제품이나 스콜틀랜드의 명물인 체크 무늬 스커트를 팔고 있었다. 아내는 울 제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였다. 나중에 어떤 체리티 숍에 들렀는데 아내는 코트를 하나 골라서 입어 보았다. 이 신부는 잘 어울린다고 사라고 했다. 이 신부도 스웨터를 하나 샀고 나도 하늘 색 비슷한 색의 순모 스웨터를 하나 샀다. 값이 싸서 좋았다. 난 그 스웨터를 조금 전까지 그러니까 5월말까지 아주 잘 입었다. 에딘버러에 올 때 차비가 비싸서 조금 망설였는데 이런 좋은 옷들을 싼값에 샀으니 본전을 뽑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좋아들 했다.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집이라는 곳을 지나서 세인트 자일 교회를 보았다. 겉을 보면 성공회나 카톨릭 교회 건물 같은데 안에 들어가 보니 이른바 제대(altar)가 없어서 그 교회가 개신교 교회임을 알 수 있었다. 스코트랜드 교회는 장로교의 기원이 되는 교회인데 그 교회의 내력이나 특징 같은 것을 자세히 알 길은 없었다. 누군가 해설자가 있어서 좀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교회를 나와서 조금 올라가니 에딘버러 성이 보였다. 성에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하고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 맛은 그런 대로 괜찮았는데, 이 신부가 짓궂은 농담을 해서 내가 삐지고 말았다. 아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왜 그랬냐고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왜 그랬는지 우습다.에딘버러 캐슬은 도시의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데다가 바위 산 위에 있어서 위엄이 있었다. 난 전에 워릭 캐슬을 본지라 자연히 그것과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성 자체는 그것만 못한 것 같았다. 큰 기대를 걸었던 나에게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다지 큰 매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안에서는 무슨 군인 장비를 전시할 뿐만 아니라 이차 대전 때 노획한 전리품 따위를 늘어놓아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해가 하도 짧아서 네 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하다. 성을 나오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몇 군데 더 볼 곳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늘 저녁을 어디서 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루 더 묵으면 에딘버러를 더 볼 수는 있지만 그 만큼 비용이 더 들뿐 아니라 돌아가자마자 바로 런던 여행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너무 피곤할 것 같았다. 생각 끝에 오늘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 신부도 같이 가겠다고 하더니 나중에 김성재 교수가 하루 더 묵고 가라고 권하니 그러겠다고 하면서 남았다.역전에 와서 시간표를 보니 차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떠나야 할 상황이었다. 전화를 하니 김 교수님은 나오시겠다면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그 사이에 숙소에 맡겨둔 가방을 가지러 아내와 함께 다녀왔는데 꽤 먼길이어서 좀 고생을 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하니 김 교수님도 곧 도착하셨다. 하루 더 머물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과 관련이 있는 어떤 팝도 보여주고 그럴 텐데 왜 굳이 일찍 가느냐고 하면서 섭섭해 하셨다. 섭섭한 작별을 하고 기차에 올랐다.이 신부가 농담한 것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해설하고 변명하느라 한 시간 이상을 열변을 토했다. 아내는 그렇게 열을 내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이제 잘 알았으니 그만 하란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아내는 내게 팔짱을 끼고 기대어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기차는 갈 때보다는 훨씬 빨리 달려서 네 시간인가 만에 버밍햄에 도착했다. 내일 하루는 푹 쉬고 모래는 런던으로 간다. 
Name: 김재성
  코벤트리
1996년 1월 20일1996년 1월 20일코벤트리
 어제 좀 피곤했는지 늦게까지 잤다. 칩핑 캠던을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겠고 그곳에 가는 차가 없다 하니 어떻게 가겠는가. 오늘은 이미 너무 늦었으니 어디 가까운 곳이나 다녀와야겠다. 코벤트리 성당이 좋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곳을 가보기로 하고 일단 길을 나서는데 마침 김성재 교수님과 이 신부가 양 신부 차를 타고 오고 있었다. 김성재 교수님은 다짜고짜로 내일 에딘버러에 가려고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셨다. 같이 가면 그곳 안내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어서 그저 역전까지 차나 태워달라고 따라 간 것인데 뉴스트리트 스테이션에서 차를 한 잔 하면서 김성재 교수님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학생 할인권을 만든다고 부랴부랴 돌아와서 그것을 만들고 다시 표를 두 장 끊었다. 무려 백 파운드 정도가 나가는 여행이다. 하지만 지난 번부터 요엘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는 꼭 봐야 한다고 해서 한번 가보고 싶은 터였다. 옛날에는 영국과는 별개의 나라였으니 영국의 도시 하나를 더 보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여행이다. 아내도 스코틀랜드를 한 번 보고 싶었는지 크게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성재 교수님 말씀 대로 카드를 긁어서 애딘버러 여행을 계획했다.
코벤트리 성당의 폐허. 이차대전 때 독일군에게 폭격 맞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의 교훈을 얻고 있다.
그러고 나서도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우리는 그 시간에 코벤트리를 가기로 하고 다시 열차에 올랐다. 금방 만든 할인권으로 나는 할인 가격에 표를 샀다. 코벤트리는 지금은 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이차대전 때 독일군으로부터 폭격을 받아서 완전히 파괴되고 그곳의 대성당도 파괴되었는데 그 잔해를 치우지 않고 두어서 기념을 하고 옆에 새 성전을 지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 가면 여자가 머리를 늘어뜨리고 좀 야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이른바 '고디바 부인(Lady Godiva)'이다. 그는 그곳의 영주가 혹독한 세금을 거두어 들일 때 삭감을 요구한 사람이다. 못되먹은 영주는 세금을 감해줄 마음이 없어서 고디바를 골탕먹일 생각으로 "네가 발가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면 그리 해주지" 했단다. 그런데 정의감이 투철한 고디바는 그의 말대로 알몸으로 말을 타고 동네를 돌았는데 그의 마음을 다 아는 동네 사람들은 다들 창문을 닫고 보지 않음으로써 협력을 했다고 한다. 어느 한 호색한이 몰래 보려고 얼굴을 내밀었다가 시종이 쏜 화살에 맞아 눈이 멀었다는 전설이 있다.
Name: 김재성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
1996년 1월 19일1996년 1월 19일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
 아내는 유럽 여행은 이번 일정의 절반일뿐이며 이제 나머지 영국 여행을 해야겠다고 한다. 내가 바쁘면 혼자서라도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다. 하지만 영국에서 배낭 여행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더욱이 겨울철에. 아무튼 최대한 아내에게 영국을 보여줄 의무가 나에겐 있다. 버밍엄 근처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으니 우선 가까운 데부터 보아야겠다. 난 다시 영어 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내가 학교 간 동안에 여행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집에서 쉬겠다 했다. 다행(?)이다. 김성재 교수님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나더러 수업은 무슨 수업이냐며 매일 여행을 다니라고 했다. 영국에 다녀 가면서 300만 원 빚지지 않으면 바보이니 무조건 카드 긁으면서 여행 다니란다. 그러면서 가장 가볼 만한 데로 치핑 캠던을 꼽으면서 꼭 가서 하루 정도 묵으면서 중세의 가구들의 냄새도 맡아보고 느껴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격려에 힘입어 영어 수업까지 빼먹고 우리가 처음으로 가본 곳은 세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이었다.
(이곳은 지명부터 재미있다. Stratford-upon-Avon이니, "에이본 강 위의 스트라트포드"라는 아주 구체적인 지명이다. 스트라트포드라는 이름의 동네가 또 있어서 구별하려고 그랬는지 모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강 이름을 그렇게 넣었다면 참 생각이 깊은 것이다. 그곳에 가 보면 알지만 강이 너무나 그 마을과 잘 어울리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도시 이름 하나에도 강 이름을 나란히 적어서 강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 우린 에이본 강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강들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남한강 위 양평", "북한강 아래 가평" 이런 식으로 쓰면 훨씬 덜 삭막하지 않을까...)
에이본 강. 이곳엔 백조가 많다. 오른쪽에 불빛 위로 보이는 건물이
세익스피어극장이다. 거의 일년 내내 연극을 하는데 늘 매진이다.
Name: 김재성
  정파 훈련소 사진
드디어 정파 모습이 카페에 나왔다..^^
Name: 김재성
  사진준비중
사진준비중
Name: 김재성
  가족사진
사진 준비중
Name: 김재성
  Carulli Waltz in G p8
Name: 김재성
  Home Sweet Home :H.R.Bishop はにゅうの宿 classical guitar solo
Name: 김재성
  Waltz - Ferdinando Carulli
Name: 김재성
  Ferdinando CARULLI - Andantino in G
Name: 김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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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은, 한신대와 한신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한신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성서를 보고 성서의 빛에서 다시 우리 현실을 비추어 보는 성서읽기에 관심이 많다. 복음의 진리를 꿰뚫으면서도, 신학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성서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예수의 기적』(2010)『민들레 성서이야기』(2002)『그 목수』(1999)『오실 그이』(2001)『기적과 성령』(2003)『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2003) 등이 있다.

2007.12.09
김재성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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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 비유의 설교 주제 [신학...201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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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런던2002.01.28
에딘버러 첫째날20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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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습 
Carulli Waltz in G p8 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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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z - Ferdinando Carulli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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