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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규의 텍스트와 현실 :::

Name	황성규

Subject	자녀들에게 원체험을!

자녀들에게 원체험을!
마가복음 10:13-16

1. 2005년 4월 부활절 다음 주일에 제자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점심 후 목사실에서 환담을 하는데, 초등학교 4, 5학년쯤의 남학생이 목사님을 찾아 왔다. 손님들이 있어서인지. 문간에서 목사는 아이 머리를 감싸고 소년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한 후 돌려보냈다. 주일 예배후면 언제나 그렇게 한다고 했다. 매 주일 계속된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의 인성과 신앙 형성에 그 일이 어떤 결실을 가져올까? 속으로 자문했지만 지금 그 대답을 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훗날 청년-장년이 될 그의 머리를 감싼 목사의 손, 그리고 간절한 기도는 그에게 “원체험”이란 이름으로 남을 것이란 것은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2.가톨릭의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Karol Wojtyla)가 지난 4월 3일에 선종했다. 58세 젊은 나이에 교황이 되어 129개 나라를 방문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 업적의 객관적인 평가는 그의 장례식에 국가 대표 급 조문객 200명을 비롯해서 100만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후 그의 생애가 영상과 언론매체로 여러 측면에서 조명이 되었다. 그의 업적이 거론되면서 자주 “원체험”이란 말이 쓰였다. 그가 이룩한 업적의 그 뿌리에는 다양한 경험이 있다. 그는 조국 폴란드가 공산화 되었을 때 지하신학교에서 공부하여 사제가 되고 대주교로서 사목활동을 했으며,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살해당했지만, 교황은 고향 바도비체에서 유대인 소년들과 격의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공장에서 노동자로서 살기도 했다. 교황이 1993년 유대인과의 2000년간의 반목을 정리한 것, 이 땅의 노동자들,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향한 관심 그리고 20세기 말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의 몰락 혹은 그 퇴조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 등은 그가 일찍 몸소 체험했던 이른 바 “원체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3.1966년 10월에 타계한 심원 안병무 선생은 신약학자요 민중신학자였다. “역사의 예수”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평생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알고 ‘예수 살이’ 하고 싶었던 분이다. 그가 살아내고 싶은 청빈의 삶의 동기도 예수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말한 “원경험”의 문맥을 위해서 좀 길게 그의 말을 여기 인용한다.

“독일 가기 전까지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쫓아다녔어요. 이 한사람의 운명을 위해서 내 인생을 여기서 끝마쳐도 좋다는 자세를 가졌어요. 너 한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질적으로 사는 것이지 계획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살았어요. 나눔(sharing), 무소유, 동참이라는 원칙을 실체로 몸으로 실현하려고 애썼어요. 한 푼이라도 저금한다든지, 가구를 산다든지, 두 벌 옷을 마련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 돌이켜 보면 이런 경험은 예수에게서 비롯된 것이오. 어릴 때 예수를 알기 전, 빈곤과 같은 인간의 비극적인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걸 뼈저리게 공(公)적으로, 집단적인 것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예수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예수의 사건을 통해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의 새로운 탄생이고 원경험(Urerfahrung)이며 원계시(Uroffenbaru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원 선생에게 그 원체험이 모든 사고와 삶의 결단에서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4. 태교(胎敎)도 어쩌면 원체험을 위한 것이겠다. 임산부가 모차르트 음악을 듣거나, 정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거나, 폭력적이고 끔찍한 것들을 피한다는 것 등도 아이의 원체험을 위한 엄마의 배려라 할 것이다. 아이의 이유(離乳)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갑작스런 이유, 또는 가짜 젖꼭지의 갑작스런 차단 등으로 인한 성격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하니 원체험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의 네 경우는 인생살이에서 원체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이번 글의 제목을 ‘자녀들에게 원체험을!’이라 한 것은 5월은 가정의 달이고 특히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어린이 주일설교를 위해서 자주 선택되는 성경구절은 마가복음 10장 13-16절과 병행절(마 19:13-15, 눅 18:15-17)이다.

흔히 어린이는 순진하고 순종 잘하고 겸손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설교를 한다. 본문에서 보면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만져 주기를 바라서 예수에게 데려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다. 예수는 그런 제자들에게 화를 낸다. 아이들을 막지 말라고 하신 다음의 말씀이 뜻 깊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개역성경). 그런데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원문에 없는 뜻을 담아 “어린이의 심정으로”(새번역),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공동번역)라고 번역했다. 공동번역은 본문을 의역해서 어린이가 순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새번역은 ‘어린이의 심정으로’를 추가했는데, 그 심정이란 저 순박함, 겸손 및 순종 등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맞는 조건으로서 순진함을 제시한다. 어린이의 순박성을 강조하다 보면 본문의 본 뜻이 감추어지거나 무시될 수 있다. 즉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 그래서 전혀 중요하지 않는 존재인 어린이들처럼, 또 이와 같은 처지의 세상 사람들 곧 가난하고 세상에서 전혀 대책이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감추어진다는 말이다.

제자들이 차단막이 되어 어린이들이 예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시의 통념에 따른 행위다. 당시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회였고 사람들은 그 관습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한데 그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분노는 무엇인가? 노기 띤 스승을 볼 때, 그리고 어린이들을 막지 말라고 분부를 받았을 때, 그들은 얼마나 당황했으며, 또 얼마나 난처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제자들의 공격에 어린이들이나 그 부모들은 얼마나 당혹했으며 실망했을까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수는 전혀 다른 처방을 내 놓으셨다.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복음적 처방이었다. 어린이들이야 제자들이 자기들이 예수에게 오는 것을 막았을 때, 그런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는 예수의 뜻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체험을 했을 것이다. 싸늘한 분위기가 갑자기 온화함으로, 깜깜하던 것이 돌연 밝은 것으로, 두려움 같은 것이 뜻밖에도 평안함으로 어린 자신들의 심혼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출산율은 밑바닥이라 한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속담의 신봉자가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현실은 그렇다.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적 성향이 요원의 불처럼 번지는 세태이기도 하다. 그게 다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에서 자식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일이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난 일임을 추가할 수 있다. 그 와중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하는 부모들이 있으니 이제는 고마운 일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부모들에게 그리고 유치원, 저학년 아동들의 교사들에게 “원체험”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없지만 자식들 또는 어린이들에게 평생을 좌우할 만한 것을 체험하게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감히 일깨우고 싶은 것이다. 연못에 무심코 던진 작은 돌멩이가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이지만, 그 반대의 감동과 사랑과 진실을 매개로 한 인생의 위대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체험을 갖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월간 홀씨 2005.5월호)

DATE: 2005.10.08 -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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