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아침의 날씨는 좋았다. 가지고 온 우산이 여전히 무용지물이다. 부다페스트에 온지 8일 째, 집을 떠난 지 13일 째다. 오늘 하루 쉬고 내일 독일에 가서 두 밤을 자면 귀국이다. 휴식은 해야 하지만 하루를 다 쉴 수 없어 우리는 어부의 성과 궁성과 마차시 교회가 있는 부다로 향했다. 자유의 다리를 또 건넜다. 엘리자베트 다리는 참 아름답지만 자유의 다리는 별로다. 도보로 다리를 건너가서 전차를 탔다. 우리가 특히 보려는 곳은 마차시 교회고 그와 못지않게 찾는 곳이 있는데 핸드 메이드 옷을 파는 곳이다. 지난 7월에 이곳을 다녀 온 동서가 그 때 사지 못한 자기아내의 세타를 사 갖고 오라는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시 교회는 그 지붕과 내부가 빈의 스테반 사원과 비슷한데 그 규모가 작다고 했다. 역시 여러 개의 첨탑과 지붕의 색깔이 건축미를 살려 놓는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 오르니 저 아래로 도나우 강이 흐르고 이쪽에는 이 쪽대로 또 강 건너에는 거기대로 아름다운 헝가리 수도의 전경이 펼쳐진다. 강 건너 저 멀리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도나우 강변 따라 길게 자리 잡고 그 넘어 저 편에 헝가리의 영웅 이스트반 교회와 탑이 보인다. 3년 전 방문한 적이 있는 교회다. 그런데 우리가 사려는 세타가 없는지라,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소용없었다. P 목사의 말이 맞았다. 여름에 본 핸드 메이드 물건이 더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처제가 갖고 싶어 한 물건을 사지 못한 것이다.
그 날 우리는 로마니라는 집시 심방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집에 돌아 온 시간은 저녁 먹을 무렵이어서 가기 어려웠다. P 목사는 인도에서 구라파로 수천 년 전에 흘러 온 이들이 로마니 즉 집시들이라 했다. 집시는 떠돌이들이나 다 그런 것은 아니라 한다. 유럽이 안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로마니 문제인데 우리 선교사들은 그들을 위한 복지사업과 선교 업무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기장 증경총회장 한 분이 이끄는 겨자씨 회에서 로마니 교회건축 부지를 매입했고 교회 건축을 계획하고 있기도 한데 이들 선교사 부부의 사명과 역할이 막대하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천사들이다. 그런데 우리도 보고 싶은 집시의 집을 사정상 가보지 못해서 섭섭했다.
그 날 저녁 우리가 두 분을 위해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집에 머물렀던 P 목사가 이미 저녁을 해 놓았기에 우리는 말로만 대접하고 말았다. 마지막 날 저녁의 야경을 놓질 수 없어 우리는 저녁 후 거리에 나왔다. 10여분 걸으면 도나우 강변이다. 도나우 강의 야경은 아름답다. 페스트 쪽에서 보는 강 건너 어부의 성과 궁성 그리고 다녀 온 마찻시 교회의 야경은 또 말하지만 아름답다. 프라하의 야경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여기대로 아름답다는 말이다. 우리는 도나우 강과 여러 개 다리의 야경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했으니 지난 여름 7월 유람선을 타고 이 도나우강 주변 야경을 본 처제 탄성을 액면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월 9일 아침 일찍 공항에 가야 하니 짐을 챙기고 잠을 자야했다. C목사와 P 목사 내외에게 진 사랑의 빚이 많다. 나는 종이에 돈 얼마를 넣고 몇 자 적었다.
정으로 셈하면 많은 것도 적고 적은 것도 많아집니다. 우리 사이에 이런 정이 있다고 믿기에 우리의 고마움은 남기고 정은 안고 총총 떠납니다.
2001년 10월 9일 황성규. 김수자
DATE: 2003.01.27 -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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