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파트 정원 사이로 산책을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 밤하늘은 별이 더욱 가득해 보입니다. 여름밤보다는 별들이 한참 멀리 있는 듯 하여도 더욱 선명해 보입니다.
제가 예전에 일출을 찍으러 동해안이나 남해안 돌산도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공기가 아랫 가슴까지 서늘하지만 일출을 그려 가지고 왔더라면 아쉬움은 남지 않았으련만 번번이 작정한 대로 일출은 찍지 못하였습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그것이 걷히기를 고대하며 시간을 늘리면 이미 해는 바다위로 멀리 떠 오른 상태였구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후에야 일출이나 일몰을 찍으려면 늦봄 이전이나 늦가을 이후에 작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는 안개가 없기 때문에 굳은 날씨만 아니라면 마음에 그린대로 일출이나 일몰을 찍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늦가을밤 하늘의 별은 더욱 빛나 보이는가 봅니다.
가을 밤하늘의 가득히 빛나는 별들은 가슴을 시리게도 합니다. 가까이 있어 보여도 잡을 수 없는 별들이 한 참이나 멀리서 빛나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밤하늘에 가득히 별들이 빛나도 머물 곳 없이 그리움을 찾아 인가(아파트)를 돌아다니는 두 마리 흰둥이 검둥이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느 못된 주인이 버렸는지 그럼에도 주인을 찾아 사람을 그리워하며, 흰둥이가 아파트로 놀러옵니다. 저 멀리서는 검둥이가 세발로 절뚝거리며 흰둥이에게 다가옵니다.
이곳 저곳 정원을 다니기도 하다가 현관문으로 사람들의 인기척이 있으면 흰둥이는 물끄럼이 현관을 쳐다봅니다. 검둥이는 좀 더 멀리 흰둥이를 지켜보고 있구요.
제가 산책하다가 불러 봅니다. 검둥이는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비명을, 신음을 내고 도망을 치려하지만, 흰둥이는 저를 쳐다봅니다. 눈빛이 안타까워 보입니다. 그러다가 흰둥이는 검둥이를 따라 갑니다.
흰둥이는 검둥이에 비교하면 사람을 좀 더 잘 따릅니다.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픔이지만, 검둥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듯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검둥이가 세발만 가지고 걸어 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후, 혹은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후, 사람으로부터 학대받고 그러는 사이에 뒷발의 일부가 어떤 사고로 잘려져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검둥이 마음에 상처로 남아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 밤에는 종로에서 볼일을 본 후 집으로 오기 전에 잠시 종묘를 들렸습니다. 거기에도 흰둥이 검둥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흰둥이 검둥이는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애완견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 분들은 벤취에 흩어져있는 소주병들과 음식 찌거기를 벗하며 잠자는 듯하였습니다.
그 잠이 꿀보다 더 달수는 있어도 가슴이 아립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줄 사회가 진정 없는 것인지 제 스스로 물어 봅니다. 저 분들 중에는 체질적으로 방랑하는 심성을 가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여 보호소에 들어가서도 탈출한 궁리만 꾀하여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하여도 가슴이 아픔은 어찌된 연유입니까. "승천하신 주님을 그리며 먼 하늘만 바라다보았던 사도들"의 심정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어제 밤 산책길에도 다름없이 우리 집 제키가 먹는 사료를 한 그릇 퍼 가지고 나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담아 흰둥이 검둥이가 놀러오는 아파트 건물과 정원이 붙은 모서리에 놓아두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추운 날에 굶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흰둥이와 검둥이가 오늘밤에도 우리 아파트로 놀러온다면 제발 냄새를 잘 맡아서 제 작은 성의을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이 적자생존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가 되었다 하더러도, 모든 피조물이 먹이사슬에 얽혀있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하느님의 피조물다운 품격을 누렸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서리 안을 훔쳐보았습니다. 그릇 안의 먹이가 많이 줄어 보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공중에 나는 새들도 먹여 주시고 들판의 들풀도 꽃 피게 해주십니다. 이렇듯 은혜로운 아버지의 일을 저도 미약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탄을 맞기 전에 우리 동네 산언덕을 한번 둘러보렵니다. 혹시 거기도 종묘에서처럼 빈 술병과 음식찌거기를 벗삼아 꿀 같은 단잠을 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혹시라도 있는지. 주님이 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혹시 더디 오신다면 저라도 주님이 되어보려는 오만으로 주님의 감각안에서 낮은 구유간을 찾아보렵니다.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가을이 깊은 밤하늘에는 은총처럼 별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아파트 모서리에, 종묘에, 그리고 구유간에도
DATE: 2002.10.30 -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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