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메일보내기

이름검색
한신대 강의실
느낌있는성서읽기
걸으며떠오른생각
만난사람
성서읽기
이야기마당
김순현
민경룡
임규일
이희숙
최명숙
땅끝편지
한승진
유기쁨
김석천
조정제
이정순
세상보기
월간홀씨
마을지기방
민들레책방
회원접속 : 0
비회원접속 : 8
새회원 : 0
총회원 : 2,767
   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비번찾기 자동

::: 조정제의 들꽃향기 :::


:::글쓴이 소개:::

69 56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조정제
Subject   부활후에 맞은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를 저는 부활절 이후에 보았습니다.

예전에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쳐 날 때에는 매주일 금요일마다 성당에 가서
성당 벽에 걸려있는 “주님의 수난에 대한 14가지 성화”를 바라다보며
또한 그 앞에서 해당되는 성서본문을 읽으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묵상하였습니다.

(((주 : 십자가의 길이란
성서묵상 기도의 하나로서 주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실 때부터 무덤에 묻히실 때까지의 성서 본문을 14가지로 구분하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도록 한 기도입니다.
14가지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하나 하나의 성화(혹은 판화)들로 그렸으며
제 1처 성화 앞에서부터 14처 성화 앞까지 돌아가면서 관련 성서본문을 묵상하며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가톨릭에서 사순절에는 매 금요일마다 공동체가 성당에 모여 전례(공동체의 공식 예배=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십자가 길 기도를 공동으로 합니다.)))

논쟁을 좋아하는 다른 교단에 속해있는 친구 분들이
이러한 제 모습을 보고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닌데 왜 그리 고행을 자처하느냐>라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할 때에는 설명을 해 주어도 주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가 거져 은총을 받아
또한 선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모든 것을 거져 받아
“성도=그리스도인”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거듭 태어났으나,
우리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거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지복직관의 근원이신 우리 주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조물주가 피조물로 오신다는 것부터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물주가 피조물의 손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찢기우졌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찢기워진 우리 주님은 다시 우리의 생명의 양식(성찬)으로 매일처럼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의 일용할 양식(먹거리)이 되어 주십니다.

이러한 우리 착하신 주님의 무한하신 자기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금요일마다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하면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우리 주님만 기억이 납니다.
길을 가고 올 때
가난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을 보면 우리 주님의 피땀이 떠올라 주님처럼 그분들에게 그 생명체들에게 친근하게 다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히 생겼습니다.

그런데 근자 몇 년동안은 한번도 주님께 제대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거져 받는 은총과 구원을 이야기하며 다른 분들과 토론에도 자주 끼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드리고 주님의 고난을 잊지 않았을 때에는
<죽을 죄인인 내가 거져 구속되었음에 감사 눈물>을 자주 흘렀었는데,
요즈음에는 간혹 주님 앞에서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한 후 그리스도의 수난(패션오브 크라이스트)를 감상하였습니다.
간혹 영화 안에 흐르는 로마 군사들의 과장된 언행이나 사탄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거슬리기는 하였으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간 잊고 살아왔던 우리 주님 자신의 십자가의 길을 제게 강렬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영화가 당대의 우리 주님의 고통을 아무리 생생하게 표현한다 하여도
우리 주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반만큼이라도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은 제게는 영화시간 자체가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실제 고통은 체험을 하지 못하였으나
주님의 희생제사를 곁에서 보낸 것과 같은 전율과 목메임은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속량되어졌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전해 받아진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속량되신 과정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근자에 저는
“제가 거져 속량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온 살아 온 것”에 대하여 마음이 아파집니다.
거져 받은 은총과 구속만을 주로 이야기 하였으니,
제가 거듭났다면서 은총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평상시에 주님을 거슬러 아무렇지 않게 짓는 죄에 대하여는 <용서를 거져 다시 받을 것이니>,
죄에 대해서 제가 무감각해졌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은
제게 제가 거져 받은 은혜를 다시금 강력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부할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
저는 거꾸로 부활제1주일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바라다보면서
우리 주님의 고통안에서 깊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슬픔은 주님의 고통에 따른 슬픔만은 아님을 압니다.
주님의 몸이 찢겨지심으로 제 죄가 찢겨졌음을 기뻐하는 슬픔이며,
주님이 죽으심으로 영원히 죽을 저의 죽음이 죽은 기쁨에 따른 슬픔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난없은 부활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하여도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게 주님의 양떼임을 새삼스럽게 각인시켜 준 그리스도의 수난에 감사합니다.
더욱이 무덤덤하면서도 기쁘다고 인사를 드려온 이번 부할절도,
이제야 진심으로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시편79.13
13 우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떼,
감사기도 당신께 드리오리다.
세세대대 영원토록 찬양 노래 부르오리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모두에게 깃드시길 빕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게시물을 이메일로 보내기 프린트출력을 위한 화면보기
DATE: 2004.04.23 - 16:42
LAST UPDATE: 2004.05.18 - 09:49

211.253.60.34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이전글 동물들도 소문을 내며 삽니다.^^
 다음글 겨울비가 연이어 내립니다.
글남기기삭제하기수정하기답변달기전체 목록 보기

21Simple view물기없고 메마른 땅 조정제 2004.08.17 997
20Simple view동물들도 소문을 내며 삽니다.^^ [2] 조정제 2004.06.08 915
19현재 읽고 있는 글입니다.부활후에 맞은 그리스도의 수난 조정제 2004.04.23 1070
18Simple view겨울비가 연이어 내립니다. 조정제 2004.03.20 1034
17Simple view영화 실미도를 보고나서 [3] 조정제 2004.01.03 881
16Simple view빌딩 3층 창문 난간에는, [1] 조정제 2003.08.12 1422
15Simple view비둘기 이야기 조정제 2003.05.29 921
14Simple view라일락 향기는 멀어지는데 [1] 조정제 2003.05.05 1149
13Simple view눈 내리는 밤은 희망적이다. [1] 조정제 2003.01.05 1021
12Simple view성서 단상(2) 조정제 2002.12.24 1100
11Simple view성서 단상(1) [1] 조정제 2002.12.11 1180
10Simple view깊은 가을밤에 별들이 가득하다 [2] 조정제 2002.10.30 1337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이전 1  2  3  4  5  6 다음
글남기기 새로고침
이름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제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내용을 검색항목에 추가/제거 메인화면으로 돌아가기
Copyright ⓒ 2002 - mindlle.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