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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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어르신 한분이 미용실 안을 기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얼마나 조용한 동작인지 공기조차 흔들리지 않았지만 평소에 잘 웃고 애교도 많은 미용실 주인은 한번 힐끗 보기만 했을 뿐, 의식조차 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은 몇 년 전, 내가 그 근처에서 ‘공간’이라는 쉼터를 운영할 때 날마다 오시던 분들 중 한분이었습니다. 근처에 호수공원이 있어서인지 늘 산책을 하는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았고,   그 모습은 마치 가을날 바람에 구르는 낙엽처럼 메마르고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나름대로 삶의 형태들은 다양했지만 어르신들 중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는 열심히 활동을 했던 분들로 고급원두로 내린 커피를 좋아하셨으며 젊은이들보다 더 예의바르고 깍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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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졸중으로 거동을 못하시는 노모를 모셨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유난히 몸집도 후덕하신 분을 수년 동안 왜소한 며느리가 힘들게 수발했는데 이부자리에 배변을 하실 때 “아이고, 어머니 마려우시면 미리 말씀을 하셔야지요...”라고 한 마디 할라치면 “지가 맘대로 나오는 것을 내가 어찌 알고 미리 말한다냐!”라고 도리어 며느리에게 볼멘소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만 보면 너무너무 좋아하시면서 “아들, 나는 아들이 참 좋아...아들도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시곤 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목사님은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는데 그 일이 돌아가시고 난 후, 가슴에 아픈 못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 때, 단 한번이라도 “그럼요, 어머니... 저도 어머니가 참 좋아요”라고 대답해 드리지 못했던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수많은 설교로 많은 이들에게는 은혜를 끼치면서 자기를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셨던 어머니에게는 그 한 마디로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불효가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과 사랑이 단절된 그 자체가 상처가 됩니다. 능력이 없어서 자식에게 특별히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과 사랑이 연결되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 그러한 이치는 형제나, 부부나,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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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어 환웅으로부터 쑥 한 자루와 마늘 스무 쪽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먹으며 100일간 어둠 속에서 견디어야 했는데 곰은 잘 견디어 사람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로 단군신화는 전해옵니다.

호랑이와 곰이 그런 테스트를 받은 것은 삶에는 어둠 같은 절망과 마늘처럼 아리고 매운 맛과 쑥처럼 쓰디쓴 날들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의 성향에도 곰과 같은 성향과 호랑이 같은 성향이 있습니다.

흔히 우직한 곰보다는 호랑이처럼 사나워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곰과 같은 인내와 끈기가 더 소중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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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장애를 가진 자매가 이사를 할 때마다 그녀의 부모는 기본적으로 좌변기부터 확인하고 설치해줬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은 청년이 된 남성장애인에게 좌변기 대신 요강을 사용하게 할 정도로 구차했던 그 시대의 정서 때문이었지요.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돕고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목사님이 건축한 큰 교회당은 엄청나게 계단이 많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대대적으로 해오던 장로님이 개원한 병원은 경사가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생각은 있더라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희생을 감내하는 사랑이 아니면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움을 말해줍니다. 관심이 높아졌다고 해도 선행의 대상이었지 희생의 대상은 될 수 없었던, 지금껏 장애인은 그렇게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나는 남편의 등에 업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내에서 전동휠체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부터는 적적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쇼핑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원하시는 대로 잠깐이라도 들어가서 어머니와 시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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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찾아왔을 때, 나는 반가우면서도 미리 연락하지 않은 점을 책망하자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면서 잊지도 않고 “다음에는 꼭 연락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몹시도 무덥던 지난여름, 그녀는 또 예고 없이 왔는데 이번에는 그 우아한 미소 대신 부음(訃音)으로 왔습니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가 뇌일혈로 숨졌다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극적인 삶을 살아낸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고달팠던 현실을 마감했지만 내 기억 속에는 늘 웃는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넘나들던 나의 사역초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는 몸보신을 시켜준다고 만삭의 몸으로 와서 땀을 흘리며 백숙을 해주던 모습으로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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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생각나는 동요가 있습니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 ♫‘
울산에 사는 서덕출이라는 청년이 쓴 이 노랫말은 1925년에 ‘봄편지’라는 동시로 <어린이>잡지에 당선됩니다. 글을 통해 그의 맑은 정서를 접하게 된 동료문학인들은 그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가 한사코 만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문학활동을 통해서만 교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그렇게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 서덕출을 만나기 위해 기어코 울산에 있는 그의 집을 찾게 됩니다.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어서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방안에서 “들어오라...”는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어보니 서덕출이 바느질을 하다가 어색한 듯 웃는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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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를 일컬어서 우리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학생잡지에서 공상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득히 멀게만 생각되었던 서기 이천년에 관한 과학적 예언이었는데 그 때가 되면 직접 매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컴퓨터로 쇼핑을 하게 되고, 금전관리도 은행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장애로 인해 외출이 어려웠던 내게 그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지폐를 건네주고 물건을 받는 행위가 구매이고, 은행 창구에서 종이통장과 도장이 있어야 출금과 입금이 된다는 고정관념 안에 있는 내게 있어서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그러한 일들이 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가 되면 전화통화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선전화만 해도 그 가느다란 줄을 통해서 멀리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게 된다니요, 그야말로 공상과학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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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시대에는 백정, 무당, 창기, 광대 등이 천민(賤民)에 속했으며 이들은 그러한 신분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주어진 권리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수모와 모멸감 속에서 억울하게 죄인처럼 숨죽이고 살아야했습니다.

그 중에 ‘백정각시놀이’라는 풍습은 백정의 아내가 눈에 띄면 짐승처럼 마음대로 잡아서 그야말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야만적인 횡포였습니다.

일제 초에 있었던 일로 어린 딸의 학교 운동회를 보러갔던 어머니가 백정각시놀음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딸이 보는 앞에서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남자들이 올라타 희롱을 하며 온갖 모욕을 줬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자살을 하고 맙니다. 또 그런 ‘백정각시놀음’으로 모욕을 당하는 아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은 목을 매어 자살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되면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옛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소위 갑질을 당하는 현대판 천민(賤民)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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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80년대 초에 장애를 가졌지만 전문직을 가지고 비교적 성공적인 모습으로 살았던 그녀가 꼭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택시를 탈 때에도 요금의 30%이상은 팁으로 주는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나에게 그녀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한 그녀의 행동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여겨질 정도로 서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 이유를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 생각에도 나는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편견이 없는 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남의 나라로 도피한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겁하다는 생각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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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가는 신비라고 했던가요? 그래서인지 요즘에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손목을 무리해서 건초염으로 몇 달 동안 통증을 앓았고, 한쪽 눈에는 날파리 같은 물체가 보이는 증세도 생겼습니다.

처음엔 손으로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잡히지도 않으면서 그것은 늘 실체처럼 움직였습니다. 콧등에도 앉았다가 먹는 음식 위에도 떨어지고, 찻잔에도 달라붙었다가 찻물 위에 떠다니고, 그리고 다시 잽싸게 날아오르곤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노화현상인 비문증으로 눈 망막에 생긴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처음에는 외부의 현상으로 착각하고 손으로 자꾸만 잡으려 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한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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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라는 호흡기질환으로 모두가 두려워한 걸 보면 아무리 기고만장을 해도 전염병 하나로 불안해지는 게 인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막강한 권력도 그분이 내린 재앙으로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지요.

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며 광야를 가고 있었지만, 막막한 사막 길에서 그들을 보호해주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만나와 솟아나는 물에 대한 감동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인간 내면의 부패한 속성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순간순간 육신의 소리가 나오는 건 육신을 가진 자의 소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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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Simple view이 다음에는... 가온 2018.10.1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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