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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이야기 한마당 :::

:::글쓴이 소개:::

Name	강영선

Subject	밀양(密陽)의 하나님

                          밀양(密陽)의 하나님
                             (마태복음5:38-48)

최근에 개봉된 密陽 (Secret Sunshine)이라는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으로 하여금 여우주연상을 타게 해서 유명해진 영화다.  이청준씨의 ‘벌레이야기’ 라는 원작소설을 각색하여 이창동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결코 기독교적인 영화는 아니다. 교회가 많이 등장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보면 기독교에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입장에 서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을 때 그 힘든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해 종교를 찾는 본능적 욕구, 그리고 신앙과 현실적 삶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을 그린 영화다.

이미 보신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어린 아들 준이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을 찾아간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고향에 가서 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밀양으로 들어가는 국도변에서 몰고 가던 차가 고장이 나게 되고, 그 차를 고치러온 카센타 주인인 김종찬(송강호)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종찬은 신애 주변을 맴돌며 신애를 짝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같은 차를 타고 밀양으로 들어가면서 신애는 종찬에게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  종찬은 부정적인 투로 “밀양은 한나라당 도시고, 경제가 매우 안 좋다”고 말한다. 그 말 끝에 신애는 밀양의 뜻이 뭔 줄 아느냐고 되물으면서, 밀양은 비밀밀(密), 볕양(陽), 즉 비밀스런 햇볕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문제목이 secret sunshine이 되었다.

밀양에 터를 잡은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열고,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한다. 동네 여자들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땅을 사서 예쁜 집을 지어 살고 싶다고 떠벌리면서, 땅을 알아보고 다니기도 한다.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약국 주인 김 집사는 신애에게 함께 교회를 다니자고 권유한다. 그렇게 낮선 땅 밀양에서 뿌리를 내려가던 어느 날 웅변학원에 다녀오던 아들 준이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준이를 유괴해간 유괴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유괴범은 돈을 요구한다.  준이를 구하기 위해, 신애는 통장에 들어있는 전 재산과 같은 870만원을 찾아서 유괴범이 지시한 강변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돌아온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를 한 유괴범에게 준이를 돌려달라고 통사정한다. 돈은 그것밖에 없다고, 그냥 평소에 돈 있는 척 해 본거라고, 제발 준이를 돌려 달라고 울부짖지만 전화는 끊기고 만다. 결국 신애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은 수사 끝에 웅변학원 원장을 유괴살인범으로 체포하고, 준이의 시체를 찾게 된다.

그에게 삶의 전부였던 아들을 졸지에 잃고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멍하게 살아가는 신애에게 약국주인은 성경책을 주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권한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신애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죄 없는 내 아들 준이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둘 수가 있냐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갈급한 심령으로 방황하던 어느 날 신애는 부흥집회 현수막을 보고 교회를 찾아간다. 그 부흥집회에서 신애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고, 통곡을 하며 신앙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얻은 신애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면서,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들게 되고, 신도들 앞에서 간증도 하고, 전도활동에도 참여한다. 이렇게 뜨거운 신앙적 열정을 키워가던 중 신애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을 가르침대로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주변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교도소로 면회를 간 신애는 그 살인범에게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러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본 그 살인범은 상상했던 것과는 딴 판으로 얼굴이 너무 평온하다. 그는 확신에 찬 말투로 “나는 감옥에 들어온 후 주님을 만났고,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과 심령의 평화를 얻었고, 지금은 준이의 유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고 한다. 신애는 그를 만나서 충격을 받고 그 때부터 신앙적 갈등에 빠져든다. “내가 용서를 안했는데, 왜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하시는가?” 라는 화두에서 오는 갈등이다.

그 뒤로 신애는 기독교 신앙을 버린다.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고, 교회와 하나님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교회에 가서 의자를 손으로 마구 두드리며 하나님께 항의를 해보기도 하고, 구역모임에 돌을 던져보기도 하고, 목사님이 설교하는 시간에 ‘거짓말이야’ 라는 노래를 틀기도 하고, 교회 장로인 약국 김집사의 남편을 유혹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결국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신애가 마당에서 혼자 머리를 자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종찬은 신애를 위해서 거울을 들어주고, 거울을 보며 자기 머리를 자르는 신애의 등 뒤로 따사한 햇볕이 비춘다.

이 영화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약간씩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저에게는 세 가지 큰 신학적 주제를 던져주었다.

첫째로, 그의 아들이 유괴당하고 죽임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신학적 질문이다. 약국주인 김집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신애에게 “모든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고 말한다.  과연 그녀의 아들이 그토록 처참하게 죽임당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세상만사를 ‘하나님의 뜻’ 또는 ‘하나님의 섭리’로 쉽게 생각해 버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한 사고(思考)는 결과적으로 인간에게는 면책특권을 주게 되고, 하나님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신애의 아들이 죽임당한 것은 아이를 이용하여 목돈을 갖고 싶었던 그 유괴범의 흉악스런 욕망,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인간경시 풍조와 황금만능주의라는 사회악이 빚어낸 결과이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아이는 인간의 악한 욕망과 사회악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그런 비극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고난이 없는 세상을 원하신다.  사고도 없고, 병자도 없고, 공해도 없고, 전쟁도 없고, 죄도 악도 없는 세상!  눈물도 한숨도 없는 세상을 원하신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지극히 적은 사람 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18: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유한자 인간이 겪는 불행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다(롬8:28).  비록 인간의 악한 욕망과 사회악으로 인해 신애가 그런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그러한 절망의 나락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을 찾도록 하는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러한 비극 속에서도 그녀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다.

웨더헤드(Leslie D. Weatherhead)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뜻’(The Will of God, Abingdon, 1972)이란 책에서,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과 상황적인 뜻과 궁극적인 뜻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은 인간들에 의해서, 또는 악한 상황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 있으나, 그 상황을 역이용하셔서 하나님은 자신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어 가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표상인 것이다.

두 번째 심각한 신학적 주제가 이 영화에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인간의 용서라는 주제다.  유괴살인범이 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환한 얼굴로 나와서 “감옥에 와서 주님을 믿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그의 표정과 말에 막상 그를 용서하러 갔던 신애는 허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왜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시는가?  이건 하나님의 월권행위가 아닌가? 라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원작과 영화가 약간 차이가 난다. 이청준의 원작에서는 살인범이 면회에 나와서 자신의 죄과에 대해 어떤 책벌이라도 받겠다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사형을 받게 되면 눈과 신장 등 장기기증도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애는 그의 평화스런 모습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살짝 다르게 각색을 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소위 ‘싸구려 은혜’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 같다.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아 마음의 평화를 맛보고 있었고, 성자처럼 변해 있는 살인범의 모습은 원작에서 보다 훨씬 더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만연한 싸구려 은혜를 고발하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용서'를 너무 쉽게, 당연하다는 듯 가르칠 때가 많다. 죄로 인해 영벌을 받아 마땅한 인류를,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큰 은혜로 구원해주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다. 그 은혜와 섭리에 따라 오직 우리의 말과 고백으로 모든 죄를 너무 쉽게 용서받고, 너무 쉽게 탕감 받고, 너무 쉽게 구원을 얻는다고 느낀다.  이것이 본회퍼가 지적한 ‘싸구려 은혜'(cheap grace)다.

예수님은 준엄하게 말씀하셨다. “이 작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면 차라리 그 목에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더 낫다. 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느니 손이나 발이 없는 채로 영생을 얻는 것이 낫다.”(마태 18:6-9) 회개란 ‘믿습니다’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와 단절하는 것이고, 죄와의 단절에는 이 정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용서에 대해서도 분명한 말씀을 하셨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라.”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라.”  그러나 이 말씀은 가해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가해자에게는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너희는 제사 드리기 전에 형제와 맺힌 것이 있으면 먼저 화해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웃과의 화해가 우선이요, 하나님의 용서는 그 다음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먼저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  이 땅에서 먼저 풀 것을 풀어야 한다.  그래서 주기도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는가?

세 번째 신학적 주제가 나온다.  이 영화는 간접적이나마 한국교회의 사명을 보여주고 있다.  고통 받는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가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요란스러운 부흥집회의 모습, 요란스러운 기도소리, 요란스러운 길거리 전도단의 모습 등이 적라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끼리끼리만 열심히 모이고 친교를 나누는 집단으로 비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품위를 지녀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거짓말이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에 빛을 비추되 요란스럽지 않은 은밀한 햇볕(secret sunshine)으로, 즉 요란스럽지 않지만 은근히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서 스스로 책임 있는 어른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가야 한다. 신애와 종찬이 일상으로 되돌아와서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자르는 장면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어쩌면 이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본회퍼가 ‘성숙한 인간’(man of age)이라는 말로 잘 표현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감내하려는 성숙한 자세로 살아갈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은밀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이다.  (07년 6월 22일, 교수퇴수회 설교>

DATE: 2007.10.06 -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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