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했던 글쓰기를 다시 하기 위해 수고하면 생각과 글이 좀 변하고 더 나아질까 싶지만, 아마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은 여전히 그 타령일 게다. 그래도 부탁이 있고 다시 뭔가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이 차에 무책임한 채로 감히 독자들 앞에 또 섰다. 부디 용서하시기를.

나름대로 전공이라고 생각하면서 미천한 지식으로 몇 편의 글도 쓰며, 주제에 거절도 못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떠들곤 했는데 정작 내 생각은 정리해 보지 못했다. 남이 이렇게 말했다는 둥, 남 핑계 대는 말만 해온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내 생각이라는 것이 있을까. 머리를 아무리 쥐어 짜봐도 끝내 남이 이랬다면서 또 독수리 타법으로 말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함부로 된 내 생각을 넣어 보려고 한다.

종교(기독교)와 예술(건축, 미술)이라는 큰 두 개의 서로 다른(?) 덩어리 집안이 결혼한지 오랜데, 그 자식들의 정체를 잘 알 수 없어 다른 골목길에서 한 번 찾아보고 싶다.

어떤 특강을 가봐도 매일 그 소리가 그 소리더라는 것처럼 모든 것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하나 별 도리 없이 또 특강이 되고 만다. 좀 덜 지루하고 쉽게 해 보려고 한다.

종교의 근성은 아무래도 ‘영원성’에 있는 듯 싶다. 진리는 도처에 있으나 영원성은 아무 곳에나 산재해 있지는 않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성실성과 도덕성을 구하기보다는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잘 살아보겠다는 재미있는 욕망으로 종교를 갖는 사람들은 생명수를 찾아 상식과 도덕성에 아랑곳없이 상상 밖의 엉뚱한 행동들을 한다. 단순히 호흡하는 기술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은 특이한 호흡으로 갈고 닦은 애매한 수양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그것을 바로 영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소리는 서점에서 식상할 만큼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종교는 터무니없어서 재미가 있고 광란하면서도 침착하다.

예술은 어떠한가. 어떤 예술가는 무지하게 심오해서 스스로도 철학자인지 성직자인지 미술가인지 모르는 작품을 내 놓는다. 차라리 물레방아, 나무 등 좋은 것은 다 들어있는 그런 이발소 그림이 보기 좋고 억지로 이해하려는 척하지 않아도 그냥 이해되어서 좋다. 이런 그림들이 왜 이발소나 목욕탕 같이 대중이 자주 드나드는 곳에 붙어있는지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무식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놓고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냥 접근하기를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예술작품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죽을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을 아는 만큼 영생을 얻는 것도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술을 알고 싶어하고 그럴듯한 작품 진품으로 한 점 아파트에 걸어두고 싶어한다. 교양을 양육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풍부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인지, 옆집에 자랑하고 싶어서인지, 아마 모두 다 일 것이다. 돈주고 구입하는 그림의 장르는 이해 못할 추상화보다는 대체로 사물을 잘 묘사한 그림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교회 다니는 사람 집안에 들어서면 그 어떤 그림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이 주로 걸려있는 것을 본다.

45도 하늘을 지긋이 바라보며 기도하시는 수염 난 예수님의 영성 깊은 옆얼굴이 또렷하고 잘생겨서 보기에 좋고, 그 예수님이 나와 내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 같아 좋고, 예수 님 그림이 집안에 있으니 마귀 넘볼 틈새 없어 좋고, 남에게 내 신심을 알리는 것이 좋고, 남이 내 방에 들어오면 그 그림 앞에서 까불지 않아 좋고, 중이 보시 오면 우리 예수 믿어요 해서 좋고, 값이 싸서 좋고, 이해하기 쉬워서 좋고, 잃어버릴 일없어 좋고, 허전한 벽 장식해서 좋고, 그런데 그 앞에서 부부가 그 일을 할 때는 뒤 짚어 놓을까 궁금하다. 아무튼 좋은 것이 많고 여러 가지로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로마네스크 풍의 비쩍 마른 예수그림을 돈주고 사다 걸어 놀 한국사람은 드물다. 일단 보기에 안쓰럽고 잘 먹고 지내는 내가 그것을 볼 때마다 양심에 찔릴 것이고.

그렇다고 평생 이발소 그림만 보고 살 것인가? 평생 겟세마네 예수초상만 걸어둘 것인가? 아마 오래는 못 그럴 것이다. 우선 이런 그림에 곧 식상하고 지겨워져서 못 견딜 테니까.

이제 이 어린애처럼 액자 틀에서 빠져 나와 잔재주를 부려보려고 한다.
                                                                         (월간 <홀씨>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