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동경엘 갔다가 수년 동안 또 달라진 건물들의 군상을 보았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눈에 보인 건물들이기 때문에 이 건물이 동경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행한 일본인 친구에게 무슨 건물인지를 물어 그 용도를 대충 알게 된 것들일 뿐이다. 특히 시청사와 국제회의장 건물은 공공건물로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축조하는 것인데 저렇게 많은 돈을 들여 축조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과 불평이 높았다고 한다.

엄청나게 높고 권위적인 국회의사당과 동경시청사, 유리로 된 국제회의장, 그 근처의 원통형 건물 등, 동경은 초현대식 고층빌딩의 박람회장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재료를 직접 만져보지 않아 건물의 외피가 돌인지 혹은 돌처럼 만든 인조석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표피만은 진짜 돌처럼 보였다. 인조석으로는 그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돈이 많은 나라에다 지진도 많으니 그 높은 빌딩을 축조하는 데 공법과 재료에 인색하거나 눈가림했을 리 없다.

재료에 솔직하고 충실할 때 견고하고 멋진 건물이 탄생하는 법인데, 우리나라는 대체로 이 점에서 약하다. 그래서 부실하고 허약해 보이는 것이다. 오죽하면 다리가 다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됐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실제로 빌딩의 수명도 그 어느 나라의 것보다 짧다. 건물을 축조하는 데 꼭 돌이 좋고 시멘트는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멘트는 건물에 곡선을 낼 수 있고 경비가 비싸지 않은 이점이 있지만 수명이 길지 못하고 보기에 천박하며 일정한 독성도 있고 후에 건물을 재건축할 때 그 처리에 있어 큰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축은 시멘트가 값싸고 다루기 편하며 공정 일정이 짧아 선호하고 있다. 건물의 아름다움은 재료의 속성에서 오는 질감과 색감, 그리고 주변과의 조화, 편리한 기능성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대개 한 마디로 표현된다. 성스러움, 혹은 웅장함, 시원함, 경쾌함 등. 그러나 실제로 내부에서 체험하는 공간은 또 다를 수 있다. 겉만 좋거나 내장만 좋아서도 건강할 수 없다. 바야흐로 고도 동경은 현대도시로 탈바꿈을 하면서 동시에 고건축을 사랑하고 보존하고 있다.

종로 화신백화점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마징가 제트 건물을 한번 보시라. 국세청으로 임시 사용하고 있다는데 이러한 형상이 종로가 지니고 있는 정서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종로에서 어떤 조화를 갖고 있는지를. 라운지에 올라가 비싼 커피 마시고 밖을 보니 서울은 아직도 개발도상이다. 이곳저곳에서 계속 건축중인데 청계천 복원공사까지 겹치면 이제 대책이 없다. 단 하나 대책이 있다면 모두 참고 걸어다닐 것. 강남역 근처에 교보빌딩이 들어섰다. 그 유명한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곳을 체험한 후 써보려고 한다. (2003.07 월간 <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