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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
존재의 가벼움을 상기시키는 <21 grams>
이 영화는 영혼의 무게를 얘기한다. 영혼의 무게는 21g. 사람이 죽기 전과 죽은 후 몸무게는 21g 차이난다 한다. 죽으면 영혼이 육체 바깥으로 나가니까 결국 이 21g은 영혼의 무게, 이런 설명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강아지는 죽기 전과 후의 몸무게 변화가 없다 한다. 사람에게서만 측정 가능한 그 21g을, 영혼의 무게라고 가정할 수 있다. 설득력이 있다. 그럴 듯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discovery’ 채널에서는 사람의 폭력성향을 뇌의 전두엽 관찰로 분석해낸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의 요지는, 폭력은 뇌의 전두엽 기능에 장애가 생긴 사람이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즉 폭력 가해자들은 뇌기능 장애인이라는 것. 그럴 듯한 얘기다. 그 사실로 우리 모두가 폭력사건을, 그리고 폭력사태를 더 잘 해결 또는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것, 그걸 알면 우리는 뭘 알게 되는 걸까? 나는 신기한 것에 잘 감동하는 편이다. 하여 ‘영혼의 무게=21g’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는 좀 흥분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영혼의 무게 어쩌구, 강아지 실험이 어쩌구 하면서 조잘대기까지 했다. 나의 21g, 너무 가볍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중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이 있다. 너도나도 자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마당에 ‘가벼움’이라니…. 게다가 (확실하진 않지만) 영혼의 무게라고 하는 건 어쩌자고 그렇게 가벼운가?
삶의 정수, 삶의 핵심은 상당히 복잡하고 무겁고 대단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는 때가 있다. 사는 게 힘겨울 때, 고민이 생겼을 때, 왜 이렇게 내 삶은 고단한가 하면서 삶의 무게를 과잉 측정하곤 한다. 그럴 때 내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21’이라는 숫자를 떠올리지 않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나(그리고 우리)는 또 측정된 숫자에 기댄다. 그래도 어찌 보면 다행이랄 수 있겠다. 비록 숫자에 기대었지만, 영혼을 주제 삼을 수 있게 된 것.
머리 속에 있는 삶의 사건들은 이 영화의 편집방식처럼 두서가 없고 뒤섞여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일관된 시간순서가 없고, 질서가 없다.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영화의 시간순서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각각 자기의 삶을 (이 영화를 볼 때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재구성하면서 살고 있을까? 사는 게 너무 바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21g도 잊고 엉터리같은 서사구조로 짜여진 내 인생을 그대로 그냥저냥 끌고 가고 있는 거나 아닌지….
<아모레스 페로스>를 본 후 나는 이 감독(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alez Inarritu)에게 관심을 갖고 다음 작품을 기다렸었다. <21 Grams>, 그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다.
한 가지 더. 잭 조단(베네치오 델 토로)의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죄'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만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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