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인간’을 설명할 때 똑바로 서서 걸어다닌다 하여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인간)라고 하고,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라고 부르기도 하고, 모이면 잘 논다고 해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라고 부르기도 하고,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도 하고, 둘 이상만 모이면 서열을 정하고 정치를 한다고 해서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라고도 부른다. 인류의 과학기술과 정보가 발전하면서 최근엔 새로운 가치와 정보를 찾아 유목민처럼 여기 저기 옮겨 다닌다고 해서 ‘호모 모벤스’(Homo movence, 이동하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는 뜻의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석유를 사용한다는 뜻의 ‘호모 오일리쿠스’(Homo oilicus) 등 인간을 설명하는 용어는 인류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 생겨날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인간을 ‘갈대’라고 했다. 그러나 그 갈대는 '생각하는 갈대’, 곧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기 때문에 결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생각하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세계와 삶을 해석하고 합리적인 판단할 줄 아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개관해보면 인간의 이성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0년도 채 안 된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시대라 해서 잠자고 있던 인간의 이성과 의식이 깨어난 것을 계기로 하여 근대가 출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짧은 기간에 인류가 이루어놓은 역사라고 하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우리 민족은 조선왕조 봉건제도 아래 500년 동안 이성과 사고(思考)가 거세된 역사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반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지배논리에 의해 일반 백성들은 결코 한문이나 언문(=한글)을 가까이 하거나 공부해서는 아니 되는 사람들이었다. 생각을 하면 반동이나 불순분자, 역모로 몰렸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 서열에 의해 농사짓는 사람들 이하 모든 평민과 천민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부모세대가 하던 일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5백년 이상을 살아온 것이다. 권위적인 군사정권 시절에도 국민의 이성과 사고는 ‘반공’과 ‘경제개발’에 저당(抵當) 잡힌 채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그 유명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씀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영적인 감화와 깨우침을 주었다.

2천 년 전 유대의 소외된 땅 갈릴리 백성들에게 예수는 선지자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누가복음7:24-26)라고 물은 후, 세례자 요한은 결코 갈대처럼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줏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낙타털옷에 가죽 띠만 둘렀을 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니다. 화려한 옷을 사람(왕이나 고위관료들)은 왕궁에 가서 찾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린다면 인간은 연약한 갈대일 수밖에 없지만, 세례자 요한처럼 양심과 역사의식, 지조와 줏대가 살아 있는 생각하고 깨어있는 존재라면 인간은 결코 연약한 갈대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단풍의 계절이 왔다. 여기 저기 산들마다 들판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억새들이 지천에 피어났다. 이 좋은 계절에 두륜산을 가든 설악산을 가든 금강산을 가든 백두산을 가든 그곳에는 단풍과 어우러지는 사람들이 있어야 제격일 것이다.

단풍과 어우러지는 그 사람들은 시대와 역사와 삶의 의미를 묵상하고 곱씹어볼 줄 아는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올 가을에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보려고 산으로 들로 나갔더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