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까

서양 철학사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임종 때 자신의 운명에 감사하면서 특별히 세 가지 감사의 내용을 밝힌 것은 유명하다. 사람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 것이 첫째요, 야만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태어나되 문명의 도시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한 것이 둘째요,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태어나 그의 제자가 된 것을 감사한 것이 셋째라 했다.

그러나 그의 감사관(感謝觀)을 후에 어떤 사람이 평하길 플라톤은 ‘철학으로는 위대했지만 감사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①남자로 태어났음을 감사한다면 여자로 태어났다면 감사할 수 없겠다는 점 ②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면 다른 인종이나 민족으로 태어났다면 감사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 ③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태어났음을 감사한다면 다른 시대에 살았다면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란 점을 들었다.

동양 철학사에서는 중국의 맹자가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 해서 세 가지 큰 즐거움을 말했는데, 삼락이란 다름 아닌 감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감사요(父母具存 兄弟無故), 고개를 들어 위로는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숙여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둘째 감사요(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셋째 감사(得天下英才 而敎育之)라고 했다.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 플라톤과 맹자가 공교롭게도 훌륭한 스승과 뛰어난 제자와의 만남을 감사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을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플라톤 식으로 말해보면 약소국이 아닌 강대국 미국에서 태어난 것, 그래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지 않을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사는 수도민국(首都民國)의 한국인들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나되 딸이 아닌 아들로, 그것도 전라도에서 태어나지 않고 서울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게 보아도 분명 발칙한 생각이다. 아무래도 우리에겐 플라톤의 감사보다는 맹자의 감사가 개인과 사회가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열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을이 나가고 겨울이 들어서는 환절기이다. 친구가 쟁반에 내놓은 고운 홍시를 보고서, 집에 품고 가도 잡수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서럽다고 노래한 조선시대 선비 박인로의 시조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하늘과 땅을 품고 여유롭게 모든 피조물, 자연과 공존(共存)하고자 했던 조선인의 어진 마음씨를 노래한 시인 김남주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결실(結實)한 열매를 바라보며 풍요로운 추수의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까. 홍시처럼 잘 익은 어진 사람이 되어 나의 ‘삶’을 젯상(제단)에 바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 제물(예물)이 아닐까 성찰해 본다(창세기4:7, 마태복음5:23-24).

“지붕 위, 감나무에 달린 감이 새빨갛다. 다 익어 홍시가 된 것이다(盡性). 동양 사람들은 다 익은 사람을 인(仁)이라고 한다. 자기 속알(德)을 가진 사람이요, 지붕 위에 높이 달려 있는 감처럼 하늘나라를 가진 사람이다. 사랑의 단물이 가득 차고 지혜의 햇빛이 반짝이는 높은 가지의 감알, 그것이 어진 사람이다. 완성되어 있는 사람, 성숙해 익은 사람, 된 사람을 동양에서는 사람(人)이라고 한다. 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命), 말이 쏟아져 나오고(道), 사랑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을 인(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仁)은 다 된 사람(成人)이다.”라고 전 이화여대 교목(校牧)을 역임했던 김흥호목사는 참 인생을 잘 익은 홍시에 비유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