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흥행과는 좀 거리가 먼 기이(奇異)한 영화를 잘 만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가운데 인간의 본성에 관한 평범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작품이 있다(이하 봄). 경북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주산저수지의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하루는 동자승이 야산에 나가 송사리와 개구리, 뱀 따위를 잡아 몸뚱이에 돌멩이를 매달아 놓고 그것들이 힘들어하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냥 좋아라한다. 이 모습을 목도한 노스님은 밤에 동자승의 몸에 맷돌을 매달아 놓는다. 아침에 눈을 뜬 동자승은 자기 몸에 매달린 무거운 맷돌 때문에 쉬 일어나질 못하고 낑낑댄다. “네놈이 어제 밖에 나가서 한 짓을 이제야 알겠느냐, 오늘 나가서 당장 그것들을 풀어 주거라!”고 노스님이 동자승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동자승은 속세에 나갔다가 변심한 애인을 죽이고 주산저수지로 도망쳐 들어온다. 자기만 영원히 사랑할 줄 알았던 애인이 어찌 변심할 수 있느냐며 살기를 번득이며 이빨을 부득부득 갈자 노스님은 청년에게 호통을 친다. “속세가 그런 것인 줄 몰랐더냐!” 이래저래 사람은 철이 들고 정신 차리기 전에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소진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성탄절이다 세모(歲暮)다 해서 사람들이 까닭 없이 들뜨고 설레는 때이다. 며칠 지나면 무자년이 가고 기축년 소띠 해가 밝아온다. 어제도 뜨고 오늘도 뜨고 내일도 어김없이 똑같이 떠오를 해를 보고 새해라고 부른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자들이 읊조렸듯이 새해가 되었다고 세계가 새롭게 달라질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해에 소망을 담아 간절히 기원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과 삶을 위한 인간의 근원적인 바람(所望) 때문일 것이다. 2009년을 앞두고 이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캐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잠시 묵상해 보았다.

국민의 의식과 생각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매체는 텔레비전이다. 국민의 텔레비전에 대한 신뢰수준은 거의 100%에 가깝다. 가령 “대통령이 어젯밤에 쥐덫에 걸려 죽었대!”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면 “진짜? 누가 그래?” “텔레비전에 나왔어.”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왜? 텔레비전이 그랬으니까! 농담처럼 해본 말이지만 국민의 의식이나 생각을 통제하여 권력을 영구화하려는 조폭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방송법을 개악하고 역사교과서를 일본판 교과서로 교체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자년 들어 예(禮를) 숭상(?) 한다는 숭례문이 불타더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린 암담한 현실이다. 하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올곧게 굴린 것은 국민들이었다.

인간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세계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이 때 우리 국민들이 새해에 할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아이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공부냐고 항변한다면 하늘이 “더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느냐!”고 호통 칠지도 모른다. 서점에 달려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책 한 권 사서 공부하자. 공부는 어린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래도 겨우 사람이 될까 말까 하는 것이 인생이다.

함석헌 선생이 오늘 우리 국민에게 해주시는 새해 덕담은 바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구약 호세아서 4:14)가 아닐까. 나이가 많아서 늙은이가 아니고, 적어서 젊은이가 아니다. 매사가 ‘늘 그런 이’가  늙은이고, 매사에 ‘저를 묻는(問) 이’가 젊은이다. 일상에 매몰되지 말고 늘 자기 자신을 묻고(問) 성찰하는 오!늘! 하루하루를 영원(永遠)으로 알고 살아갈 일이다.

김영일목사(해남사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