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한신대 강의실

느낌있는성서읽기

조금씩맛보기

걸으며떠오른생각

만난사람

성서읽기

이야기마당

세상보기

월간홀씨

회원접속 : 0
비회원접속 : 5
새회원 : 0
총회원 : 2,776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

:::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ing :::

◀

▶

Name: 김재성

꺼졌다 켜짐을 즐기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재밌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고교를 막 졸업한 때였는데... 뭔가 재미난 일을 찾다가 책에 빠져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대개 분량이 방대하다. 언제 그것을 다 읽을까 싶다. 그런데도 일단 시작하면 어떤 재미에 빠져서 그 많은 분량을 금세 독파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추리소설 기법을 도입하였을 뿐 아니라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그래서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되고 또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를 할 때는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요즘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다시 읽어 보면서 그의 글이 갖는 묘미를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된다. 그는 어쩌면 여러 주인공들에 대한 여러 개의 파일들을 갖고 있는 사람 같다. 그리고 한 파일을 열어서 재미난 얘기를 하다가 좀 지루할 즈음엔 어느 새 다른 파일을 열어서 딴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또 그 이야기가 지루할 즈음엔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래서 서너 사람의 이야기로 흘러가다 보면 이제 처음에 하던 이야기를 잊어버릴 때쯤에 “아 참 아까 그 처음 주인공 어떻게 되었더라”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처럼 그렇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러면 나도 참 아까 그 이야기가 거기서 멈추었었지.. 어떻게 되었을까 하면서 다시 처음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파일을 펼쳐 보이는 소설의 방식이 무슨 방식이라고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이 인생의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인생은 따분하다 하면서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재미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흥미를 갖게 한다. 무엇도 지루하게 끌지 않는다. 조금 이야기 하다가 장면이 바뀐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지만 꼭 처음 장면으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으면 미완성 작품 같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특히 미스터리 수사극 같은 것은 전체의 99 프로 이상을 계속해서 단서만 찾고 수 십 개의 파일들을 펼치고 또 펼치면서 독자 또는 시청자가 종잡을 수 없게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러다 맨 끝에서 전체의 1 프로가 될까 말까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 그 많은 파일들이 종합이 되면서 어떤 결론에 이른다. 대개는 엄청난 반전이 따른다. 우리가 범인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은 범인이 아니고 전혀 상상도 못한 인물이 사실은 범인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생도 그렇게 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나 삶은 오직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 또는 하나의 스토리.. 송죽같은 굳은 절개 한 사람만 섬기는 어떤 이야기들만을 칭송한 적도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는 정절로 백성과 신하에게는 충성으로 강요되어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어떤 한 가지 성실한 길 또는 모범적인 길을 제시함으로써 삶은 단순화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오직’ ‘절대로’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 오직 한 개의 파일뿐이기 때문에 그거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오직 예수’라는 말을 좋아하고 교회 앞에 큰 돌에다가 새겨놓은 교회도 있다. 그래서 타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고 어느 정도는 신경증적인 측면도 있다. 지나치게 집착하고 어떤 가르침에 몰두하고 자기네의 하나의 파일만 절대 유일하게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다.

프로이트를 비롯해서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런 태도에서 신경증이 유래했음을 연구하고 있다. 오직 하나의 파일만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하나의 파일에 온 힘이 쏟아지기 때문에 거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실리고 혹 그것이 거절되기라도 하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서 비정상적인 충성심과 에너지를 쏟게 되고 그것은 금제가 되고 터부가 되어서 신경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온 같은 심리학자는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파일로만 살 수 없다고 본다. 꺼짐과 켜짐을 동시에 즐기는 삶을 권한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는 순환과 반복의 사이클 또는 리듬을 즐기라고 한다. 아이건 같은 심리학자는 예수는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절대적으로 믿으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그것을 조금씩 맛보는 식으로 우리 삶에서 죽음과 삶을 경험하면서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융도 그렇게 본다. 그는 선과 악의 양단간에 선의 편에 서라고 결단을 요구하는 어떤 식의 삶이 사람에게 콤플렉스를 만들고 무의식을 억압해서 병을 만든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균형잡힌 의식을 통해서 그리고 반대의 일치 또는 역설을 통해서 사람들은 전인성을 획득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하나의 파일만을 갖고 사는 단조로운 존재들이 아니다. 오직 한 길만 파는 그런 사람이 칭찬받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이것저것 해보면서 삶의 경험을 많이 쌓고 내게 가장 행복한 길을 찾는 것이 좋다. 한 개의 파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여러 개의 파일을 펼쳐 놓고 이것이 지루하다 싶으면 잠시 덮어놓고 또 다른 파일을 열고 또 그것이 지루하면 또 다른 파일을 열어서 새로운 삶들을 향유하고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아까 보다 놔둔 파일로 돌아왔을 때 좀전의 지루함은 사라지고 훨씬 더 성숙한 내가 새롭게 또 새로운 재미를 느끼면서 이전 파일을 대하고 있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소설로는 도스토옙스키고, 영화나 드라마일 것이다. 또한 컴퓨터로 나타난 것이 이른바 윈도우라는 것일 거다. 여러 개의 파일을 펼치는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여러 개의 윈도우를 열어놓고 글에서 작업하다가 페이스북으로 또 그러다가 바이블웍스로 또 그러다가 트위터로 또 그러다가 다음으로 네이버로 구글로 유투브로... 수십 개의 창을 열고 닫으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전에는 이렇게 하면 너무 정신이 없다, 집중이 안 된다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전에는 오직 한 길만 파다가 그게 안 되면 거기서 포기하거나 자살해버리는 것이 크나큰 부작용이었다.

이젠 그럴 필요 없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다. 거기서 안 되면 돌아가고 다른 길을 찾고... 조금씩 맛보면서... 때로 죽음을 경험하지만 그래도 다시 거듭 살아나면서 새로운 파일을 펼치는 기쁨을 맛본다. 인생을 오직 한 파일만을 위해서 수십 년 수천 수만 날을 살아가는 지루한 대출상환으로 살 필요가 없다. 인생에는 하나의 목표란 있을 필요도 없고 있다 해도 그것은 수시로 변경되고 움직인다. 인생은 짧지 않다. 일년만 해도 열두 개의 파일이 있고 열 두 개 파일 안에는 또 서른 개의 작은 파일들이 있다. 그 하나하나의 파일들이 저마다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것들이다. 매일 그런 파일을 하나씩 펼쳐 보는 재미로 사는 삶은 시간을 깨어 있게 하고 황홀하게 할 것이다.

모처럼 17일짜리 유럽 여행을 갔다고 해보자. 하루 하루가 새로운 경험이고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오늘은 런던 내일은 레이크디스트릭트 모레는 에딘버러... 그 다음은 파리 루브르 오르세, 칸느, 고호가 그림 그리던 아를 지방... 그 다음은 베네치아, 피렌체... 이런 곳들을 하루 하루 본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하루인들 설레지 않고 흥미진진하지 않은 날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날은 그 여행만큼 가치가 없는 날들인가, 덜 소중한 시간들인가? 아니 똑같은 나의 날들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살기만 하면 오늘 하루의 삶도 유럽 여행 못지않은 설레는 날이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날들이 아닌가.

너무 큰 단위로 파일을 접었다 펴지 말자. 꼭 맨 마지막에 한번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매일 작은 파일들 펼치고 지루하면 다른 파일을 펼치자. 늘 정리하면서 결론짓고 나가려고 하지 말고 파일들을 좀 늘어놓고 살자. 결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냥 파일을 펼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하나의 파일을 접을 때마다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도 우리는 잠깐 죽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매일 경험하면서 매일 또한 살아남을 경험하자. 창을 열고 숲을 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들이쉬면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살아나자. 생일날 단 한번 태어나서 미래에 단 한번 죽는 그런 지루한 삶은 어쩌면 허상이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예수께서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도 예수는 한번 죽고 부활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을 믿는다고 했다. 예수는 우리에게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 외길을 가라고 하지 않는다. 수많은 파일들을 펼치면서 순간들을 행복하게 살고 예수께서 매순간 우리 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라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유인가!

DATE: 2011.06.24 - 16:22

LAST UPDATE: 2011.06.24 - 16:24

110.8.182.28 - Mozilla/4.0 (compatible; MSIE 8.0; Windows NT 6.1; Trident/4.0; SLCC2; .NET CLR 2.0.50727; .NET CLR 3.5.30729; .NET CLR 3.0.30729; Media Center PC 6.0; InfoPath.2; .NET4.0C)

1 2 3 4 5 6